[천자칼럼] 트럼프와 U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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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13 17:36 수정2026.04.13 17:36 지면A31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MMA)단체 UFC는 단순한 격투기를 넘어 극한투쟁의 서사를 담은 스포츠 콘텐츠를 생산한다. 80여 개국 출신 선수들이 최후의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운다. 매년 40회 이상 대형 라이브 대회가 열리는데, 연간 방송 중계권료만 1조원이 넘는다.

[천자칼럼] 트럼프와 UFC

UFC의 출발은 초라했다. 1993년 열린 UFC 첫 대회는 말 그대로 막싸움이었다. 체급 구분, 라운드 제한이 없었다. 보호 글러브도 의무가 아니었다. 눈 찌르기와 물어뜯기 등 일부 공격만 제외하고 모든 게 허용되는 원초적인 경기였다. 미국 36개 주가 대회 개최와 방송 송출을 금지했다.

2001년 대회 장소조차 구할 수 없던 UFC에 손을 내민 건 당시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도널드 트럼프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타지마할리조트를 흔쾌히 내줬다. UFC는 이를 발판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했다.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20년 넘는 인연을 유지하며 선거 때마다 후원금과 지지 연설로 보답했다.

트럼프 역시 UFC를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격투 무대에 오르는 전사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영하며 정치적 위기 때마다 강인함과 결단력을 부각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2019년 11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조사가 한창이던 시기에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UFC 경기장을 찾았다. 2024년 6월 ‘성추문 입막음’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제 미국과 이란의 정전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에도 그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UFC 경기장 맨 앞줄에 앉아있었다.

UFC는 오는 6월 14일 백악관 잔디광장에서 ‘프리덤 250’ 야외 라이브 경기를 열 예정이다.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이란 명분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국정 최고 결정기관 앞마당에서 유혈 낭자한 격투 대회를 열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의 폭군과 원형 경기장이 떠오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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