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가수·‘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 저자 고전을 진득하게 읽은 편은 아니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도입부는 기억한다. 마들렌을 먹을 때의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워낙 유명하니까. 하지만 솔직히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이나 꿈에 대한 묘사보다 나에게 남은 것은 ‘마들렌’ 그 자체였다. 지금은 디저트 전문점에서 마들렌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내가 처음 책에서 접했을 즈음에는 주변에서 찾기 힘든 과자였다. 소설에 대한 흥미는 금세 시들해졌지만, 마들렌은 어떤 과자일까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즐거웠다. 분명히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흔하고 익숙한 것이겠지만, 여기서 소설을 읽고 있는 내게는 구체적인 현실의 것이 아니라 상상 속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런 ‘어딘가 분명 실재하지만 접하지 못한 상상 속의 존재’들이 주는 신비로움이 예전에는 더 컸던 것 같다.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서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동경을 가졌고, 크라잉넛과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인디밴드와 록 음악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처럼. 내 나름대로 짐작하고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이 미지의 존재들은 나에게 때로 더 큰 상상력으로 보답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 실제로 그들을 만나게 될 때까지 내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은 원본과는 달라도 상당 부분 나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 남았다. 실제로 현실에서 마주쳤을 때 약간 실망하거나 생각과 달랐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학창 시절 인디밴드 음악에 빠져 있던 나에게 마들렌과 같은 존재가 ‘체리샴푸’였다. 자우림의 1집에 수록된 ‘파애’의 가사에는 ‘너무너무 아름다운 너, 아름다운 너에게선 체리샴푸 맛이 나’라는 구절이 있다. 그 앞 구절인 ‘조각조각 부서진 마음에서 나는 레몬과자 맛’은 그래도 조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체리샴푸란 어떤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샴푸는 다 비슷한 향뿐이었다. 체리샴푸란 실제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상실감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 답이 없는 시험문제를 곱씹는 기분으로 체리샴푸 맛이 나는 이별에 대해서 상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머리를 자르러 들른 미용실에서 샴푸를 받다가 깨닫고 말았다. ‘아, 이것이 체리샴푸구나.’ 제품의 통을 보거나 미용사 선생님이 말해주신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느낄 수 있었다. 체리맛 음료의 향을 마시지 않고 머리에 바르기만 하면 이런 느낌이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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