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의 상세설계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공동으로 맡기는 것이 담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유권해석 의뢰에 공정위가 내놓은 답변이다.
KDDX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t급 최신형 이지스함 여섯 척을 확보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개념설계를 맡은 한화오션과 기본설계를 한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수주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사업이 2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정부가 발주하고 관리하는 방위산업 사업과 관련해 담합 여부를 따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무기 도입 사업은 애초 독점적 성격이 강하고, 필요하면 정부 판단에 따라 수의계약이 이뤄진다. 곤혹스러운 공정위가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은 이유다.
방사청과 공정위의 어색한 ‘핑퐁’이 벌어진 데는 이재명 대통령의 한마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타운홀 미팅에서 이용철 방사청장에게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마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고 말했다.
2022~2023년 KDDX 사업과 관련해 옛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의 개념설계 자료를 불법 촬영·유출한 혐의로 임직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이 발언 이후 방사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본설계를 하지 않은 한화오션에 사업을 맡기자니 부담이 크고, 경쟁입찰로 가자니 양측 모두 반발할 게 뻔하다.
방사청으로서는 두 업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설계’ 외에 뚜렷한 대안을 찾기 어려워졌다. HD현대중공업 측의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련자 처벌과 입찰 과정에서의 보안 감점이 이미 이뤄진 상태다.
이번 유권해석 의뢰는 대통령의 불호령은 피하면서 사업은 추진해야 하는 방사청의 고육지책에 가깝다. 향후 문제가 발생하면 공정위 판단을 근거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방사청은 오는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KDDX 사업을 재논의할 예정이다.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설계 세 가지 안이 모두 테이블에 올라 있지만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후폭풍은 불가피해 보인다.
2029년까지 KDDX 여섯 척을 모두 도입해 2030년 실전 배치하겠다는 해군의 목표는 달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미 골든타임을 넘긴 사업이 대통령의 한마디와 이례적 담합 논의로 더 꼬이지 않을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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