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리거에서 '빅클럽' 전북 주전으로…물샐틈없는 왼쪽 수비로 '더블' 기여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투쟁심으로…초심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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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안홍석]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몸이 부서지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내년에도 머리부터 들이밀고 수비하겠습니다."
김태현(28)은 2025시즌 프로축구 '더블'(K리그1·코리아컵 우승)을 달성한 전북 현대의 수훈선수를 꼽을 때 첫손에 들어갈 선수다.
왼쪽 풀백인 그는 전북의 측면을 완벽에 가깝게 봉쇄했다.
김태현의 헌신적인 '파이팅'이 없었다면 전북의 우승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김태현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K리그2(2부)의 수많은 무명 선수 중 하나였다.
2023년 입대한 김천 상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더니 지난해 여름 '빅클럽' 전북에 입단했다.
올 시즌엔 10년 넘게 부동의 국가대표로 활약한 같은 포지션의 베테랑 김진수를 밀어내고 전북의 주전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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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안홍석]
10일 서울 근교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김태현은 지속해서 발전해온 동력으로 '절박감'을 꼽았다.
김태현은 "프로 1~2년차에 너무나 강하게 느낀 게 하나 있다. 나보다 축구 잘하는 선수가 참 많다는 거였다. 내가 그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 살아남으려면 그저 머리 처박고 뛰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장에서도, 훈련장에서도 절박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투쟁적으로 플레이하는 게 습관이 됐다. 늘 운동장에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며 뛴다"고 힘줘 말했다.
김태현의 플레이를 눈여겨 봐온 팬이라면, 누구든 이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경합할 때면 상대가 누구든 머리부터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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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안홍석]
그러다 보니 유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코뼈만 다섯 번 부러졌다.
김태현의 양쪽 눈두덩엔 찢어진 흉터가 하나씩 선명하게 남아있다.
축구판엔 김태현처럼 절박하게 플레이하던 선수들이 빅클럽에 입단한 뒤 배부름에 겨워 퇴보한 사례가 참 많다.
김태현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전북에 좋은 '롤 모델'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이었던 2025시즌을 돌아보면, '캡틴' 박진섭(30)과 최철순(38), 김태환(36) 등 '세 형님'들의 존재가 가장 고맙다고 한다.
2018년 K리그2 안산 그리너스에서 함께 프로로 데뷔한 박진섭과는 함께 초심을 되새기는 사이다.
김태현은 "진섭이 형이 늘 얘기한다. 전북에 와 초심을 잃는 선수들이 있다고. 우린 '밑'에서 시작했으니, 절대 초심을 잊어선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서로에게 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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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전북 현대와 FC안양의 경기에서 전북 김태현(앞)이 안양 유키치에게 파울을 당하고 있다. 2025.8.8 sollenso@yna.co.kr
최철순과 김태환은 오른쪽 풀백이며 플레이 스타일도 김태현처럼 투쟁적이다.
최철순은 전북 한 팀에서만 뛰며 모든 우승의 현장을 지키다 올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전북 후배들에게 '자기관리의 표본'이라 할 만한 레전드다.
'대기만성 국가대표'의 경험을 지닌 김태환 역시 벌써 스물여덟 살인 김태현이 닮고 싶은 선배다.
김태환은 서른 살이 넘어서야 국가대표팀에 꾸준하게 부름을 받기 시작했고, 35세에 메이저 대회 본선 경기(2023 카타르 아시안컵)를 처음 뛰었다.
김태현은 "저 형들이 어떻게 저 나이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많이 뛰어야 하는 풀백으로서 어떻게 몸을 잘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바로 옆에서 보며 배웠다. 형들에게 배운 건 늘 리마인드 한다"고 말했다.
전북의 우승에 한몫하면서, 김태현의 마음엔 '다음 목표'가 조심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국가대표팀 승선이다.
김태현은 지난여름, 대표팀이 유럽파 없이 나선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일본전에는 아예 나서지 못하고, 홍콩과 경기에서만 45분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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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안홍석]
김태현은 "내가 부족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왔다"면서도 "적응만 잘한다면, 전북에서 보여준 실력을 대표팀에서도 보여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까지 반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김태현이 대표팀에 비집고 들어갈 틈은 매우 좁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태현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도전해보려 한다.
올해 '수비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만큼, 다음 시즌엔 공격포인트에도 욕심을 내 보겠다는 각오다.
올해는 K리그1에서 득점 없이 도움만 3개를 올리는 데 그쳤다. 수비에만 집중하느라 '비장의 무기'인 날카로운 양발 슈팅을 보여 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물론 '파이터'의 본분은 잊지 않겠다는 각오다.
고통을 감수하고 더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플레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김태현은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 그대로, 난 아직 배고프다. 2부에서 뛸 때의 마음을 내년에도 잊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h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2월12일 15시0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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