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칠해진 초록 배경 앞에서 한 여인이 목을 길게 빼고 먼 곳을 응시한다. 푸른 눈에는 불안과 고독이 서렸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끝내 하지 못한 말을 머금은 듯하다.
이 그림은 1925년 이탈리아 수집가 주세페 리치오디의 손에 들어가 그의 미술관에 소장됐다. 특별한 주목을 받은 건 1996년이었다. 18세 미술학도의 지적을 계기로 X선 촬영이 이뤄졌고, 그 결과 캔버스 아래에 그려진 검은 모자와 스카프를 착용한 또 다른 ‘젊은 여인의 초상’이 드러났다. 1917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으로 모델은 클림트가 연모했던 여성이다. 그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화가는 상실을 견디기 위해 기존 그림에 덧칠을 했다.
이듬해 2월, 작품은 다시 화제가 된다. 특별전을 준비하던 중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부 침입의 단서도, 유력한 용의자도 없었다. 6000만 유로 가치의 걸작을 둘러싸고 사기꾼, 전직 도둑, 예언가들까지 등장했지만 제보는 모두 허위였다.그림은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돌아왔다. 2019년 12월 10일, 미술관 외벽 작은 공간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채 발견됐다. 사라진 지 22년 만이었다. 영화 같은 귀환은 곧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렸지만,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화가의 사랑과 상실, 범죄와 기적의 서사까지 품은 이 초상화는 결국 클림트가 남긴 가장 미스터리한 작품이 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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