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수오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은 2024년이다. 세균과 바이러스 등 외부 적군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백혈구가 악성 세포로 바뀌어 온몸으로 퍼지는 혈액암이다. 고된 항암 치료를 견디며 몸속 나쁜 세포를 없애기 위해 싸운 2년간 수오와 가족에게 함께 웃고 즐기는 여행은 ‘꿈 같은 일’이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수오에게 자칫 감염 등이 생길 수 있어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난 9일 수오와 가족에게 ‘특별한 선물’이 찾아왔다. 그동안 치료받던 서울아산병원, HD현대1%나눔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아빠, 엄마, 형의 손을 잡고 울산으로 1박2일 여행에 나섰다. 수오와 함께 여행을 떠난 40여 명의 아이들에게 붙여진 또 다른 호칭은 ‘아워 히어로즈(우리의 영웅)’. 긴 시간 질병에 맞서 싸운 작고 여린 영웅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들의 치료 과정을 돕고 있는 강성한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도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일정을 함께했다.
작은 영웅들의 첫 행선지는 HD현대중공업의 선박 생산 현장 야드였다. 거대한 바다를 항해할 배처럼 아이들이 세상을 향한 꿈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울산문수축구경기장을 찾아 푸른 잔디를 힘차게 누비는 선수들과 손을 맞잡고 서로를 응원하는 ‘하이파이브’도 했다. “엄청 큰 배도 보고 축구 선수들이랑 손도 잡아봤어요. 진짜 신기해요. 친구들한테 전부 자랑할 거예요.” 병원 생활 내내 침착하게 견뎌내던 아이들은 모처럼 만의 외출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을 묵묵히 응원하며 기쁨도, 슬픔도 삼키던 가족에겐 ‘행복한 추억’이 생겼다.
아이에게 중증 질환이 생기면 가족의 시간은 멈춘다. 마음 한편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살아내야 하는 새로운 고된 하루가 시작된다. 밖에서 즐거운 일이 생겨도 ‘혼자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생각에 웃음을 삼키기 일쑤다. 아빠와 엄마의 관심이 아픈 아이에게 쏠리면서 건강한 형제자매도 고립감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할 아이가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아픔이다. 신체는 물론 정서와 사회 발달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들에게 가족 여행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병원을 떠나 가족 구성원이란 소속감을 경험하며 일상의 의미를 되찾는 귀한 시간이다. 아이의 치료 경과가 좋지 않거나 과정이 힘들수록 여행의 가치는 커진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가족다운 시간을 보냈다” “아픈 기억보다 함께 웃었던 시간이 머릿속에 남는다”. 여행 내내 울린 웃음소리가 이들에겐 앞으로 남은 치료 과정을 버티도록 지탱하는 든든한 ‘정서적 자원’이 됐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아이는 여전히 소수다. 소아암 같은 중증질환을 앓는 아이가 가족 여행에 나서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기업 후원이나 재단 등의 일회성 행사에 의존하고 있다. 언제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보살피려면 질병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와 간호사가 동행해야 한다.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이 동선을 짜고 건강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일정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 모두 함께하려면 숙박부터 교통까지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은 데다 이를 위한 비용도 부담이다. 돌봄 범위가 소아암 아이들의 여행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족 회복 프로그램을 위한 공공기금 등의 예산을 마련해 아픈 아이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게 힘들지 않은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다양한 문화 혜택을 누릴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문화 체험 바우처를 제공하거나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경기를 우선 예매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병원에서 24시간 아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또 다른 가족’이 된 소아암 병동 간호사의 말이다. 그는 “의료진이 동행하거나 말기 치료 환자의 구급차 이동 등이 지원되는 안전한 여행 프로그램이 늘고 저소득층을 위한 교통·숙박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아파서’ ‘돈이 없어서’ 문화생활에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시간에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작은 영웅들이 힘을 내도록 돕기 위해 모두가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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