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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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 중인 배드 버니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미국프로풋볼(NFL) 시즌 챔피언십 결승전인 슈퍼볼이 지난 8일(현지시간) 열렸다.

평소 미식축구를 즐겨보지 않거나 경기 룰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도 이날은 TV 앞에 선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식이 소비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 경기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시애틀 시호크스가 맞붙어 시호크스가 승리했는데, 정작 시호크스의 우승은 대중의 머릿속에서 금세 잊혔다.

경기가 끝나고 미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것은 하프타임 쇼의 주인공이었던 가수 '배드 버니'(본명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였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배드 버니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가수다.

슈퍼볼 공연에 한 주 앞서 그래미 어워즈에서 가장 영예로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고, 그의 앨범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2025년 글로벌 인기 앨범 1위를 차지했다.

인기 아티스트 순위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2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미지 확대 그래미 올해의앨범상 트로피 받는 배드 버니(오른쪽)

그래미 올해의앨범상 트로피 받는 배드 버니(오른쪽)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이 너무 핫해서 SNS를 달궜느냐고? 절반만 맞는 말인 것 같다.

SNS를 넘어 정치권까지 논란이 된 핵심에는 언어가 자리 잡고 있다. 하프타임 쇼 무대가 대부분 스페인어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루스소셜 글에서 "아무도 이 남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라고 불평했다.

배드 버니가 공연 도중 던진 메시지도 논란이 됐다.

배드 버니는 중남미 각국의 국기 퍼레이드와 함께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중남미 각국의 이름을 하나씩 나열하다가 푸에르토리코, 미국, 캐나다를 마지막으로 외친 뒤 "함께할 때 우리는 아메리카"(Together, We Are America)라고 적힌 풋볼 공을 던졌다.

미국인들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아메리카'는 곧 미국을 뜻한다. 배드 버니의 아메리카는 아메리카 대륙을 뜻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자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이민 당국 요원들에 불심검문과 체포 대상이 되는 일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보수층 입장에선 도발 행위였다.

사실 배드 버니는 지난달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른 여러 가수와 함께 "ICE(이민세관단속국) 아웃"을 외치며 이미 긴장을 예고한 상태였다.

배드 버니는 공연 도중 푸에르토리코 깃발을 흔들었는데 삼각형 부분의 파란색이 평소 보던 것보다 다소 연했다. 처음엔 필터 효과로 TV 화면상 색상이 바뀌어 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푸에르토리코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했다. 미국이 1952년 깃발 색을 성조기 색에 맞춰 바꾸게 했다고 한다.

이미지 확대 독립 상징하는 푸에르토 깃발 들고 있는 배드 버니

독립 상징하는 푸에르토 깃발 들고 있는 배드 버니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정말로 끔찍했다"였다.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했다.

공화당 일부 의원은 NFL과 주관 방송사 NBC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SNS에서는 배드 버니가 성조기를 불태우는 딥페이크 사진이 나돌았다.

미국 '청년 우파'의 상징인 고(故) 찰리 커크가 만든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는 배드 버니 공연 시간 보수 성향 가수 키드록과 컨트리 가수 브랜틀리 길버트 등이 출연한 '올아메리칸 하프타임쇼'를 대신 스트리밍 방송했다.

반면 이민자들과 중남미 팬, 반(反) 트럼프 진영에선 이번 공연이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난달 미니애폴리스에서 미국인 여성 르네 굿과 미국인 남성 알렉스 프레티가 이민 단속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이민단속 정책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태였다.

현재 미국 사회의 극단적인 분열 상황이 슈퍼볼 공연을 둘러싼 논란으로 다시 표출되는 모습이었다.

이미지 확대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수놓은 중남미 각국 국기들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수놓은 중남미 각국 국기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처음부터 논란은 예고됐다는 시각도 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억 명이 넘는 미국인이 동시에 시청하는 유일한 행사다 보니 태생적으로 미국의 대표성을 둘러싼 '문화전쟁'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논란을 부추기고 그에 편승하는 것 자체가 지지층을 결집하고 주목도를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연 후 지체없이 '끔찍했다'는 반응을 올린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NFL 측은 왜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고 배드 버니를 공연자로 택했을까.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논란이 돼야 시청률이 올라가잖아."

시청률을 찾아봤다.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이번 하프타임 공연은 평균 1억2천820만 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역대 4위 기록이다.

미 CNBC 방송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 30초짜리 광고는 평균 800만달러(약 115억원)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으며 완판됐다. 일부 광고는 1천만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떠들석한 논란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것은 NFL 아닐까.

이미지 확대 슈퍼볼 경기가 열린 미 샌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

슈퍼볼 경기가 열린 미 샌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

[UPI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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