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韓이 여자 골프 강국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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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韓이 여자 골프 강국이 된 이유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은 왜 잘하나요?”라는 질문을 수백 번 받아본 것 같다.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이야기는 한국 부모가 다른 나라 부모보다 더 열성적이라는 점일 것 같다. 하지만 내 경험상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부모는 다 열성적이다.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사용해 손의 감각이 더 예민한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정답이 없고 자유롭게 예측하다 보니 재미있는 의견이 꽤 많다. 내게도 몇 가지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는 항상 국내에 롤모델이 있다. 저마다 동경하는 사람은 다 다르겠지만 기준으로 삼고 싶은 자국 선수가 있다는 것은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내 경우엔 국가대표 생활과 KLPGA 투어를 함께 한 신지애 선수가 좋은 롤모델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인비 선수 등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스타가 연이어 배출됐다. 이런 성적만으로도 한국 여자 선수들은 “나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투어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꼭 동경하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내 또래 한국 선수가 투어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해외 투어가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기업의 후원도 한몫했다. 선배들이 일찍부터 L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많은 기업이 여자 프로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든든한 기업 후원으로 경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덕에 더 많은 선수가 해외 투어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후원을 넘어 기업이 직접 개최하는 KLPGA 대회 수 자체도 늘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대회가 열리면서 선수 입장에선 기량을 향상할 기회가 더 자주 생겼다. 여기에 LPGA 투어까지 개최하는 한국 기업이 늘면서 KLPGA 투어 선수가 LPGA 경기에 참가할 기회도 확대됐다.

한국만의 정서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해외 선수들과 친구가 됐을 때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이 자기감정 표현에 놀랍도록 솔직하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 앞에서 다 드러내는 것을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학습해서가 아닌가 싶다. 골프는 ‘멘털 게임’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선수와 비교해볼 때 서양권 선수는 스스로 화를 이기지 못해 경기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잦다. 내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게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지 명확히 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골프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무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여자 골퍼 성적이 과거에 비해 주춤했다. 선수들이 오랜 기간 잘해오다 보니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의견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난 그곳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전쟁터 같은 곳이라는 걸 안다. 다행히 올해는 한국 선수들이 LPGA에서 3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잠시 주춤했더라도 계속 응원해준다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 여자 골프의 전성기가 또 한 번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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