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결정은 사람이, 실행은 AI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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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종종 인공지능(AI)에 일을 맡긴다. 회의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도 하고, 복잡한 자료를 요약해 달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결과물이 미심쩍어 꼼꼼히 검토해 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AI를 신뢰하게 됐다.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한 여행 일정 설계를 부탁했다. 목적지와 콘셉트만 얘기했을 뿐인데 이동 동선부터 식당, 숙소까지 순식간에 계획을 세워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 서로 다른 옵션으로. 이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약부터 결제까지 완결해 줄래?” 물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AI는 이제 답을 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필요한 일을 알아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금융 역시 같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돈을 쓰는 일도 AI에게 맡기게 되지 않을까.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을 AI에게 위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10만원 이하에서만 결제하기”, “이번 달 예산은 넘지 않기”, “내가 지정한 곳에서만 구매하기” 우리가 먼저 원칙을 정하고, AI는 그 원칙 안에서 움직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처음 용돈을 주는 과정과도 닮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작은 것부터 스스로 해보게 하고, 믿음이 쌓일수록 조금씩 더 큰 자유를 준다. AI에게 돈을 맡기는 일도 아마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처음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은행에 가지 않고 화면으로 송금하는 것이 불안했다.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통장에 있던 잔액이 화면 속 숫자로만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질 것 같은 막연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를 편리하게 잘 이용하고 있고 또 신뢰한다. 그리고 여기서 절약한 시간과 노력을 더 건설적인 곳에 활용한다.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AI로 인해 분명 내 생활은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사고,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내 결정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실행하는 새로운 도구가 된다. 사람은 실행의 번거로움을 줄이면서, 자신의 의도와 원칙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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