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업의 노화와 '승계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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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기업의 노화와 '승계 금융'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우리 경제가 주목해야 할 ‘노화의 현장’은 따로 있다. 바로 대한민국 산업의 허리인 중소기업이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약 75%를 창업 1세대가 운영하고 있으며, 대표자의 평균 연령은 62세를 넘어섰다. 사람의 은퇴는 축복일 수 있으나, 기업의 은퇴는 곧 폐업과 생태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향후 10년 내 약 30만 개 기업이 경영 승계 문제를 겪을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 그사이 후계자를 찾지 못한 지방의 알짜 제조기업들은 문을 닫고, 그 여파는 고용 감소와 지역 공급망 붕괴라는 연쇄적인 비극으로 이어진다.

혈연 중심의 ‘가업 승계’가 아니라, 자본을 통한 ‘기업 승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며 그 중심에 사모펀드(PEF)가 있다. 고령화의 참고 사례가 되는 일본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 금융기관이 삼위일체가 되어 승계 금융 생태계를 구축했다. 정부는 제도를 정비하고, 지자체는 지역 기업을 발굴하며, 금융기관은 자금을 공급한다. 이에 더해 사모펀드가 후계자가 없는 기업을 인수하고 개선하는 구조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아직 한국에는 승계 금융에 대한 인식이 낮고, 그 기능을 감당할 선택지도 전무한 상황이다. 자본이 수도권과 첨단 산업에 쏠려 있는 탓에, 지방 제조 기업이 승계 단절 위기에 직면해도 이를 뒷받침할 금융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히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 승계 금융이 가야 할 등대 같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한 지역 활성화 펀드는 지역 금융기관과 연계하여 후계 부재 기업에 투자했다. 이들은 독자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투자 원금 대비 3배 이상의 수익과 40%가 넘는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했다. 이는 승계 투자가 안전망 금융일 뿐 아니라,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매력적인 ‘블루오션’임을 증명한다.

사모펀드를 투기자본이나 기업사냥꾼이 아닌, 실물 경제의 ‘혈액 공급자’로 인정할 때다. 사모펀드 업계도 수익만 추구하는 약탈자가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고 재도약을 이끄는 파트너임을 입증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일본처럼 지역 금융기관이 승계 펀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과감한 제도적 유인을 제공하고,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 자금을 마중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금융의 본질은 필요한 곳에 자금을 흐르게 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금융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소명은, 땀 흘려 일군 기업들이 사람의 나이 듦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그 가치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로 연결하는 일이다. ‘소유’의 종말이 ‘소멸’이 되지 않도록, 사모펀드와 승계 금융이 기업의 100년 역사를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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