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는 ‘나서지 말고 중간만 가라’는 격언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가래 끓는 발음에 능한 사람들이라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얀테의 법칙’으로 알려진 평범의 철학은 ‘당신이 잘났다고, 더 많이 안다고 뽐내지 말라’는 의미다.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물을 퍼낸 역사에서처럼 ‘개인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우선시하자’는 폴더(polder) 모델 정신이다. 이곳 사람들은 비교의 덫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치를 갖고 출발했기에 만족을 쉽게 느끼는 것 같다. 매년 행복 지수 조사에서 네덜란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평범을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세계 최고가 자주 출현한다.
국제회의 의장이나 국제기구 간부 중에 네덜란드 출신이 많다. 언어와 중재에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지에서 노란색 NL 자동차 번호판에 주목하면 좋다. 가성비가 뛰어난 관광지와 맛집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 구석구석에 검소와 겸손이 녹아 있다. 21세기에도 흑백 텔레비전을 고집하고 평일에는 흰 식빵, 주말에만 잡곡빵을 먹는 가정이 존재한다.
반면 가난한 나라를 돕자는 인도주의에는 적극적인 큰손이다. 국토가 작다는 약점을 글로벌 확장으로 극복한 사례다. 국토가 비좁아 더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그들(flying Dutchman)이 있다. 대항해 시대에 가장 인기가 있던 지도는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우리를 인터넷 강국이라 하지만 정작 온라인에서 돈 버는 회사는 ‘부킹닷컴’처럼 네덜란드 기업이 많다.
이런 문화적 배경 아래 제도는 개인의 선택 위험을 줄여줬다.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 안전망이 핵심이다. 그래야 성공보다 만족을 위해 일한다. 주거와 교육비, 의료비 부담은 작다. 바느질로 일하는 옷 재봉사와 외과 의사의 시간당 급여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종합대학은 14개 정도이고 인기 학과는 점수가 아니라 추첨으로 정한다. 기혼 여성은 주로 시간제로 일하며 가사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사회나 달의 뒷면처럼 걱정거리가 있다. 이민과 범죄, 청년 실업, 정치 우경화 등 네덜란드의 고민은 최근 유럽이 직면한 고민거리와 다르지 않다.
상위 1%에 목매는 서열 사회, 너만은 특별하다고 양육하는 세태 속에서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을 만든 원천일지 모른다. 하지만 특별함이 흔해지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보통과 평범의 입지만 위축된다. 경제학 원론에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개념이 나온다. 관중이 잘 보기 위해 모두 일어서면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뛰어난 위인, 화려한 연예인 못지않게 평범한 사람, 일상의 이웃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특별함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가 평범의 가치와 역할을 제대로 찾아가는 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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