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해제’라는 정치적 수사는 잠시 내려 놓자[기고/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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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베이징대 법학박사

허욱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베이징대 법학박사
최근 한국에 중국 관련 콘텐츠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리장(麗江), 계림(桂林)은 물론이고 베이디(北帝)산, 난닝(南寧) 등 그간 낯선 지역도 공중파에 등장했다. 중·경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그 지역 음식을 사먹는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한국식 만담인 중국 ‘상성(相聲)’의 대가 궈더강(郭德綱), 중국의 조용필이라 할 만한 가수 장쉐유(張學友)도 한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반면 한국 콘텐츠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때문에 중국 진출이 막혀 있는 상황이니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에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 역시 한한령의 해제였다. 그러나 시종일관 한한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중국이 시 주석의 방한 직후 그것을 해제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중국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질서’라는 말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국가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한쪽의 모습만 선별적으로 보려 하다 보니 불필요하게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한령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한령 해제라고 하면 곧바로 한국 아이돌 스타가 중국에서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가로 판단하려 한다. 한한령을 우리의 시각으로 정의하면서 그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즈음해 중국 저장성 자싱시 오케스트라단이 대구와 충남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오케스트라단이라고 하는데, 7개국 연주자들이 모여 있었고 한국 연주자들도 6명이나 있었다. 중국 오케스트라단에서 중국의 지휘자와 함께 활동하는 한국 단원들도 한류의 본류라 할 만하다. 또한 8월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이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순회공연을 했다.

비단 한중 문화의 상호 교류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 창조한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 제3국에 진출하는 것도 향후 한중 문화 교류의 중요한 방향이다. 또한 문화 교류는 호혜주의,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하는 영역이다. 장쉐유가 한국에서 공연을 성대하게 마쳤으니 우리도 조용필의 중국 베이징 공연을 가능하게 해 달라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해 볼 수도 있다. 명분은 명분대로, 실리는 실리대로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한령 해제라는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수사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각 문화 영역에서 완성품의 교환뿐 아니라 생산 단계에서부터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11월 1일 APEC 21개 회원국이 채택한 ‘경주 선언’에서 처음으로 문화창조산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인정하고 협력의 필요성을 명문화했다. 또한 시 주석이 한중 협력의 한 방향으로 제시한 국민 간 감정 개선과 민간교류 증진을 위해서도 문화산업 교류만 한 것이 없다. 앞으로 변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제 한한령 해제라는 숙원은 잠시 내려놓고, 좀 더 전략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중국에 스며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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