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교수의 ‘마지막 수업’[횡설수설/이진영]

1 week ago 10

의대생들은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에 들어가면 인생의 ‘첫 환자’를 만난다. 커대버, 해부용 시신이다. 눈과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를 참아가며 메스로 피부를 벗겨낸 뒤 근육과 신경과 장기의 정교한 배치와 질감을 보고 느끼고 모조리 외운다. 그 과정에서 인체의 신비와 생명을 다루는 업의 무게를 깨친 후에야 산 사람을 다룰 자격을 얻는다. 커대버를 첫 환자이자 ‘말 없는 스승’이라 부르는 이유다. ▷커대버 실습은 학생 6명당 한 구씩 배정되는 것이 이상적인데 커대버 한 구를 만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고 실습 목적에 맞게 숙성하는 데 최장 6개월이 걸리고, 시신 운구비와 약품비에 실습 후 화장비까지 구당 평균 200만 원이 든다. 이는 커대버용 시신을 확보하는 데 들이는 정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옛날엔 커대버의 대부분이 무연고 시신이었지만 1986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로 무연고 시신이 크게 줄었다. 복지원 내 사망자들이 유족 모르게 무연고자로 둔갑해 의대 실습용으로 넘겨진 사실이 드러나자 연고자 확인 절차가 대폭 강화된 것이다. ▷이제는 자발적인 시신 기증이 아니면 커대버 확보가 어렵다. 전국 의대마다 시신 기증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기증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다한다. 무연고 시신에 의존하던 시절엔 대가 없이 몸을 내어준 고인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유골을 봉안당에 안치하는 것이 다였지만 지금은 의대생들이 유족에게 감사 편지를 쓰거나 대학 내에 기증자 이름을 새긴 조형물이나 감은탑을 설치한다. 윤리 교육의 목적도 있지만 시신 기증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다. ▷해부학 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하는 이들 중엔 의대 교수들과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시신 기증이 의학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에 본인이나 가족의 시신을 기꺼이 내놓는다. 신영오 연세대 생명시스템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며 모교에 시신을 기증했다. 고인의 딸이 서울대 의대 교수다. 전남대 의대에선 이기영 교수의 모친과 장모를 비롯해 가족 3명이 시신을 내놓았고, 충북대 의대 정구보 교수는 모친의 시신을 기증했다. 모친은 생전 “학생들이 시신이 없어 실습을 못 한다니 내 몸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단다. ▷최근 향년 76세로 별세한 김종중 조선대 명예교수(삽화)가 43년간 재직해온 의대에 본인 시신을 기증했다. 해부학 분야의 권위자로 생전엔 지역사회에서 시신 기증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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