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3대 메가 프로젝트 계획이 발표(6월 29일)된 지 열흘이 지났다. 그사이 정부는 광주(30일), 충남 아산(7월 2일), 경남 진주(3일)에서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열었다. 민관 합동 점검회의(6일)에서는 광주 군공항 부지를 호남 반도체 입지로 선정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이다. 이 모든 회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규제 특례와 금융·세제 혜택, 인재 유치를 위한 정주 여건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메가특구특별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재정립이다. 우리는 그동안 복지와 사회보장 차원에서 국가 역할을 많이 얘기해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전력, 용수, 인재, 정주 여건 등이 주로 논의됐다. 메가 프로젝트를 얘기하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다가왔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과거 민주당 정부는 성장보다 분배를, 개발보다 환경 보호를 우선시했다. 원자력발전이나 댐 건설 등은 터부시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탈원전을 선언하고 4대강 보 해체를 공언했다. 지금은 천양지차다. 선제적으로 원전이나 댐을 건설하겠다는 자세다. 보수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산업화 담론까지 넘보고 있다.
빠뜨린 것도 있다. 지역 균형 발전에 집중하다 보니 ‘글로벌 이슈’를 다루지 않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지금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을 자국 내에 두려는 ‘경제 안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1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추진했다. 반도체법을 별도로 만들어 텍사스주에 삼성전자, 인디애나주에 SK하이닉스, 애리조나주에 대만 TSMC 생산공장을 유치했다.
일본 정부도 TSMC를 끌어들여 규슈 구마모토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지었다. 미국 마이크론과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독일은 미국 인텔 반도체공장 유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그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인텔이 포기한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장 부지는 인허가 및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확보가 거의 끝난 상태다. 초고속으로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한국은 세계 주요국이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확보하려는 욕구에 답을 내놔야 하는 처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한국 이외의 지역을 생각한다면 일본도 매우 훌륭한 후보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국무총리실과 정치권, 지방자치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국내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맞는 말이지만, 국내에만 집중하다 보면 글로벌 시장을 외국 경쟁 업체에 뺏길 수 있다.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반도체로 워낙 큰 돈을 벌다보니 반도체 기업을 ‘노다지 호구’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지역 갈등까지 생기고 있다. 물론 반도체는 놀랄 만한 수준의 첨단 제품이지만, 석유나 철강 같은 일반상품(commodity)이기도 하다. 어느 회사 제품을 사다가 써도 차이가 없다. 이런 상품은 글로벌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급변동한다.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해서 이런 성격이 바뀌진 않는다. 끝을 볼 때까지 가격 인하 경쟁을 하는 ‘치킨 게임’이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엄청난 고통을 여러 차례 겪으며 글로벌 치킨 게임의 승자가 됐다. 인내의 시기를 버텨낸 결과가 오늘의 영광이다. 내일엔 다시 고통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길고 껌껌한 터널을 지나갈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결과물이 당장 나올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함께 살아가고 같이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메가 프로젝트 사업은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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