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덕]AI ‘순환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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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통신사 AT&T에서 1996년 분사한 장비업체 루슨트테크놀로지스는 설립 10년 만에 프랑스 알카텔에 흡수 합병됐다. 루슨트의 몰락 요인으로는 과도한 ‘벤더(납품사) 파이낸싱’도 빼놓을 수 없다. 덩치가 큰 장비 납품사가 신생 통신사에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사 장비를 사도록 한 것이다. 통신 스타트업이었던 윈스타 한 곳에만 20억 달러(약 2조9000억 원)가 지원될 정도로 규모도 컸다. 2000년대 초 윈스타 등 고객사가 줄줄이 문을 닫자 루슨트는 매출 하락과 금융 부실이라는 두 충격파를 동시에 떠안아야 했다. ▷벤더 파이낸싱은 ‘순환거래’ 또는 ‘순환금융’으로도 불린다. 전문가들이 이런 거래 행태에 부정적 시선을 갖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다. 우선, 자금력이 부족한 고객사들의 무리한 투자를 유도해 재무 건전성을 해친다. 납품사 매출은 필요 이상으로 커져 업계 전반에 ‘착시효과’가 생긴다. 거품이 낀다는 얘기다. 그리고 고객사와 납품사 중 한 곳이 무너지면 나머지 한 곳도 늪으로 같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순환 고리가 복잡할수록 후폭풍은 더 커진다. ▷인공지능(AI) 버블에 대한 최근의 우려는 바로 이 순환거래가 25년 전 닷컴버블 때를 닮아 있어서다. 그 중심에는 ‘AI 빅뱅’의 슈퍼스타 엔비디아가 있다. 1년 넘게 미 시가 총액 1위를 지키던 엔비디아가 27일 애플에 밀려 2위로 내려앉은 것은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다. 고객사인 오픈AI에 직접 투자와 지급 보증을 합쳐 모두 6000억 달러(약 876조 원)의 금융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본 시장에서 ‘경고등’이 울린 것이다. 이 돈은 결국 엔비디아 칩을 사거나, 엔비디아 칩이 대거 들어갈 AI 데이터센터 임차에 쓰일 것이어서 순환거래 의혹이 짙다. ▷현재 AI 업계는 ‘쩐의 전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알파벳(구글 지주사),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오라클 5곳의 올해 자본 지출액이 8050억 달러, 내년에는 1조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들도 엔비디아, 오픈AI, 앤스로픽 등과의 순환거래에서 자유롭지 않다. 빅테크들의 현금 동원력에 의문을 품은 금융 시장은 점점 차가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메타와 오라클 등이 최근 자금을 조달할 때 투기 등급에 가까운 평가를 받은 게 그런 변화에서다. ▷산업이 우상향으로 가파르게 성장할 때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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