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료실에서 의사보다 먼저 병을 ‘진단’해오는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
“찾아봤는데 이건 메니에르병 같아요.” “유튜브에서 봤는데 이건 폐쇄성 이관 질환이래요.” 환자들 입에서 전문 용어가 술술 나오는 시대다. 대부분 스마트폰 속 검색과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과거에는 환자가 의사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면 이제는 의사의 설명을 검증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특히 MZ세대 환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의학 정보를 검색하는 데 익숙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 또한 빠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환자들은 더 이상 ‘설명을 듣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네이버 지식인, 유튜브, 블로그, SNS를 통해 스스로 공부한 뒤 병원을 찾는다. 의료 정보 접근성이 제한적이었던 과거 세대가 의사를 권위자로 여겼다면 MZ세대는 의료진을 대화 상대로 선택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사의 말보다 자신이 접한 정보에 대한 검증과 확신이다.
문제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확신이 앞선다는 데 있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정보를 더 높이 띄운다. “◇◇으로 완치!” “의사가 숨기는 진실!” 같은 제목이 더 많은 클릭을 이끄는 시대다. 이렇게 형성된 확신은 오히려 대화를 어렵게 한다. 진료실은 병을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정보를 조율하는 공간이 돼가고 있다.
진료 중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건 수술하면 좋아진다는데, 약 말고 수술해 주시면 안 되나요?” 하지만 우리 모두의 몸이 다르듯 질병도 결코 같지 않다. 나이, 성별은 물론 기저질환, 복용 중인 약, 동반된 증상 등 수많은 요소가 치료 방향과 경과를 바꾼다. 그런데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은 이 모든 맥락을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진짜 의학’은 검색 결과 사이의 여백에 존재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환자가 질환을 미리 공부하고 치료 방향을 이해한다면 치료 순응도는 높아지고 짧은 진료 시간 안에서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검색 내용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환자 개인의 맥락에 맞춰 재해석하고 올바른 방향을 차분히 설명하는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환자 역시 화면 속 알고리즘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와 의사의 설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진료실은 ‘설득의 장’이 아니라 ‘공감의 대화 공간’으로 바뀐다.
이제 진료는 일방적 설명이 아니라 함께 탐색하는 과정이 됐다. 환자와 의사 모두 같은 시대의 검색창 앞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아느냐가 아니다. 각자의 지식을 넘어 서로의 신뢰를 이어 붙일 때 비로소 진짜 치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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