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물 없는 원전' MSR 포문 열자…美는 빅테크 연계 SFR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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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차세대 원전 기술인 용융염원전(MSR·molten salt reactor)과 소듐냉각고속로(SFR·sodium-cooled fast reactor)가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동시에 전력과 냉각, 공정열을 대량으로 요구하는 시대에 안정적인 기저 전원 확보는 더 이상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과제가 됐다. 특히 중국이 세계 최초로 토륨 기반 MSR 실험에 성공하며 기술 실증에서 앞서가는 가운데 미국과 한국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中 '물 없는 원전' MSR 포문 열자…美는 빅테크 연계 SFR로 맞불

◇AI 전력난 해법으로 떠오른 원전

전통적인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공급체계만으로는 AI 시대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가 원전 기업에 투자하거나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추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AI는 단순히 서버를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초고밀도 연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는 국가 단위 전력 수급을 흔드는 ‘초대형 전력 소비처’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전은 다시 한번 ‘에너지 주권’의 핵심 카드로 떠올랐다. 특히 MSR과 SFR은 기존 우라늄 기반 경수로 원전을 보완할 차세대 기술로 평가된다. 두 기술 모두 고온 운전과 연료 효율, 사용후핵연료 활용 가능성 등에서 장점이 있고 사고 발생 시 자연 정지 특성을 통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원전의 유력 후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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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륨 원전, 왜 오랫동안 사장됐나

토륨 기반 원전 기술은 사실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 오히려 오래된 기술이다. 미국은 1960년대 테네시주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서 용융염 실험로를 가동했지만 이후 연구가 사실상 중단됐다. 당시 기술적 난관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전략적 우선순위의 변화였다. 냉전기 핵무기 경쟁 구도 속에서 주요 국가는 토륨보다 우라늄·플루토늄 중심의 연료 주기와 원전 기술에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토륨 원전은 ‘안전하고 효율적이지만 군사적 가치가 낮은 기술’로 분류되며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후에는 규제와 여론이 벽이 됐다. 원전 사고 이후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노형을 상용화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늘었고, 시장은 이미 표준화된 경수로 체제로 굳어졌다. 토륨 원전은 연료 주기와 재료 기술, 운영 경험이 부족해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

하지만 AI 확산으로 전력과 열 수요가 폭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토륨 기반 원전은 단순 발전소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에 바로 붙일 수 있는 ‘현장형 에너지 허브’로서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토륨 MSR과 SFR의 기술 격돌

중국이 고비사막에서 실험에 성공한 토륨용융염원자로(TMSR·thorium molten salt reactor)는 MSR의 한 종류로, 토륨을 액체 연료 형태로 활용한다. 물 없이도 냉각이 가능해 내륙 지역에 설치할 수 있고, 고온 운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나 산단 인근에 현장형 에너지 허브를 구축하는 데 적합한 기술로 평가된다. 중국은 실험로 단계에서 연구 원자로, 시범 원자로로 이어지는 3단계 전략을 추진하며 2035년께 상업화를 목표로 한다.

토륨은 매장량이 우라늄보다 많고 에너지 효율이 높아 원료 조달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또 사용후핵연료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핵확산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AI 전력난이 심해질수록 토륨 기반 MSR이 ‘산업 인프라 자산’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맞서 미국은 SFR 기반의 상용화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 사례가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의 ‘나트륨’ 프로젝트다.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2024년 착공을 시작해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6년 1분기 내 원자력 관련 핵심 부품 건설을 위한 연방 허가 확보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며, 나트륨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앞선 차세대 원전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차세대 원전을 단순 기술 경쟁이 아니라 ‘AI산업 인프라’로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테라파워가 메타와 최대 8기 규모의 나트륨 원전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빅테크가 차세대 원전의 수요처를 넘어 공급망 구축 과정까지 관여하는 ‘AI-에너지 동맹’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인프라 경쟁이 전력 인프라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 설계 경쟁보다 ‘제조 허브’로

서방과 한국이 토륨 기반 MSR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평가도 제기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기술 후퇴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 차세대 원전 설계 경쟁에 정면으로 뛰어들기보다 전 세계 SMR과 차세대 원전을 실제로 양산할 수 있는 ‘제조 허브’ 지위를 선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 기업은 두산에너빌리티다. 두산은 2026년 1분기 세계 최초의 SMR 전용 공장 착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케일파워 등 미국 SMR 기업뿐 아니라 테라파워의 나트륨 프로젝트에 들어갈 핵심 주기기 소재 공급망에서도 두산의 역할이 거론된다. 차세대 원전 시장에서 “설계는 미국·유럽이 하더라도 물건은 한국이 만든다”는 ‘원전 파운드리’ 전략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또 다른 틈새시장도 노린다. 삼성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육상형 원전보다는 선박 추진용 원자로, 부유식 원전 등 ‘해양형 MSR’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섬 지역과 해상플랜트, 해상데이터센터 같은 특수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내륙형 TMSR을 앞세운 중국과 차별화된 전략이라는 평가다.

다만 한국이 토륨 기반 원전 기술 자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배경에는 정책 불확실성과 규제 장벽이 있다. 토륨 기반 MSR은 연료 주기와 재료 기술, 안전 규제체계가 기존 경수로와 다르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여론과 규제 부담이 큰 상황에서 민간 기업이 선제적으로 베팅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차세대 원전 경쟁은 단순한 발전 기술 경쟁이 아니라 AI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전력 패권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이 토륨 기반 MSR 실증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면, 미국은 빅테크 자본과 규제 완화 속도를 앞세워 SFR 상업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 독보적인 제작·공정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제조 허브를 노리고 있다.

AI 인프라 경쟁이 격해질수록 원전 기술은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의 중심축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차세대 원전 분야에서 중국 미국 한국이 각각 기술 실증, 상업화 속도, 제조 역량이라는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삼각 구도를 형성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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