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토크쇼 진출 ‘소맥’ 역사엔 고단한 폭음의 연대기가 있다[이용재의 식사의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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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건배!”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김(한국명 김대현)은 8일(현지 시간) 미 NBC방송의 유명 토크쇼 ‘지미 팰런 쇼’에 출연해 ‘소맥’ 마는 법을 시연했다.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소주잔을 올린 뒤, 팰런과 함께 테이블을 내리치자 소주잔이 보기 좋게 맥주잔 속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소주잔이 코에 닿도록 잔을 기울이며 소맥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날 방송은 대니얼 대 김이 내레이터로 출연한 CNN 다큐멘터리 ‘K-에브리싱(Everything)’의 홍보를 위한 자리였다. 그렇게 소맥이 미 유명 토크쇼에 진출했다.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론 어안이 벙벙했다. ‘K’라는 접두어를 달면 거의 모든 게 세계적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재미있고 신기하면서도 우려스럽다. 특히 소맥처럼 술과 관련된 문화라면 건전한 사회와 배치되기에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된다. 나는 대개 여성을 모델로 내세우는 술 광고를 비롯해 음주를 장려하는 그 무엇에도 반대한다. 값싼 알코올인 희석식 소주가 ‘K’라는 이름 아래 인기를 얻는 현실도 못마땅하다.

사실 음주와 관련됐다면 그 무엇도 양지의 문화라고 보긴 어렵다. 소맥의 기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정치권과 검찰 등 권력층에서 유행한 폭탄주(맥주에 양주를 더한 ‘양맥’)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직장을 잃은 언론인들이 “소주랑 맥주도 통폐합시키자”라며 자조 섞인 농담과 함께 마셨다는 ‘통폐합주’ 설이다.

소맥이 본격적으로 퍼진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전후다. 주머니 사정이 술자리에도 반영되면서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마침 부드러운 목넘김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도수를 25도에서 23도, 이후 20도 아래까지 낮추자 국산 맥주의 단짝으로 급부상했다. 둘을 섞으면 소주는 맥주의 맛을 바짝 조여 주고, 맥주는 희석식 소주 특유의 불쾌한 쓴맛을 가려 준다. 여기에 도수도 10∼13도 수준으로 ‘딱 좋아’진다.

덕분에 소맥은 가성비 최고의 술로 등극해 오늘날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소맥을 마는, 즉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여겨지며 위상도 달라졌다. 주류 회사들은 소맥 전용 잔이나 ‘탕탕이’(거품기) 같은 공식 굿즈를 제작했고, 소맥 잘 마는 각종 기술도 퍼져 나갔다.

그런 소맥의 기세가 미국 내 한국인 커뮤니티를 거쳐 최고 명성의 토크쇼에 안착했다. 말하자면 양지 중의 양지로 진출한 셈이니, 세계 진출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서 즐겁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백해무익, 단 한 방울이라도 건강에 해로운 게 술인데 이를 놀이로 포장하는 문화가 세계로 전파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가 각 분야에서 지금 이렇게, 어쩌면 과분할 정도의 세계적 입지를 갖게 된 데에는 전쟁 같은 노동과 그 노동을 보상하려는 회식이 큰 몫을 했다. 말하자면 죽어라 일하고, 그 힘듦을 죽어라 마시며 달래 온 끝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데,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소맥 말이, 즉 음주와 여흥의 이면에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인 고단한 폭음의 연대기가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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