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하는 이승택은 자신의 골프 인생을 “18홀 중 세 번째 홀을 지나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늦은 출발이 한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필 미컬슨(미국)은 50세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나이는 한계가 아니다. 더 많이 배울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30대 초반에 ‘꿈의 무대’에 입성하는 이승택에게도 유효하다.
이승택은 올 시즌 PGA 2부 콘페리투어에서 준우승 1회, 톱10 6회를 기록하며 시즌 포인트 13위에 올랐다. 상위 20명에게 주어지는 PGA투어 카드를 거머쥔 그는 최근 경기 성남시 남서울CC 연습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출발이 늦은 만큼 더 오래 살아남고 싶다”며 “데뷔 시즌 1차 목표는 시드 유지지만, 기회가 온다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터닝포인트 된 군생활
한국 남자골프계에서 이승택은 ‘늦게 핀 꽃’으로 통한다. 2015년 K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시드를 잃은 적은 없지만 유독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는 “챔피언조에 나가고도 우승을 놓치니 ‘나는 우승을 못 하는 선수인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며 “골프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군대였다. 2020년 육군 11사단 소총수로 입대한 그는 2년간의 군 복무를 통해 골프 선수라는 직업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대여섯 살 어린 선·후임들이 제 직업을 부러워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한 번도 제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때 처음 ‘내가 좋은 직업을 가졌구나’라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전역 후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연습 방식은 더 치밀해졌고 목표는 더 뚜렷해졌다. 변화는 곧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렉서스마스터스에서 데뷔 10년 만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12번째 출전 끝에 얻은 값진 승리였다. 이승택은 “군대에서 시간이 멈춘 경험이 없었다면 미국 도전도 못 했을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군대는 인생의 재정비 시간’이라고 추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기회를 잡은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올 시즌 PGA 2부 콘페리투어에 진출한 것이다.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냐’는 주변 시선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엔 실패보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큰 무대에서 뛰면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씀도 도전에 큰 힘이 됐죠.”
◇“골프 잘 아는 선수 되고 싶다”
호기롭게 떠난 미국이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베이스캠프 없이 매주 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고, 12시간 운전도 여러 번이었다. 잔디·코스 스타일 차이도 컸다. “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이동이었어요. 이동하랴 적응하랴, 처음 6~7개 대회는 커트 통과도 버거웠습니다.”
실력 차이도 실감했다. 이승택은 “KPGA투어와 아시안투어에서 경쟁하던 선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며 “실력 있는 선수들과 치다 보니 부족한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캐머런 챔프(미국), 저스틴 서(미국) 같은 선수를 찾아가 같이 연습 라운드를 부탁했다”며 “잘 치는 선수들과 내기를 하면서 돈도 참 많이 잃었다”고 웃었다.
우여곡절 끝에 PGA투어 카드를 손에 쥔 이승택은 지난 26일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년 데뷔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최소 10년은 미국에서 버티겠다는 각오로 짐을 쌌다”며 “PGA투어에서 뛰면 뛰는 만큼 배우는 게 많다. 정말 ‘골프를 잘 아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승택의 데뷔전은 내년 1월 15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2026시즌 개막전 소니오픈이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우승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슈퍼루키가 되고 싶다”며 “한국 기업이 후원하는 더CJ컵 바이런넬슨에서 첫 승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남=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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