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누구의 것인가[이은화의 미술시간]〈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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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원래 시민의 공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토론이 꽃피었다면,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광장에서는 축제와 시장이 열렸다. 근대 혁명의 시대에는 민중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역사를 바꿨다. 이처럼 광장은 도시의 심장이자 민주주의의 무대였다.

그러나 20세기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이 활기찬 공간을 가장 고독한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초기 대표작 ‘붉은 탑’(1913년·사진) 속 광장에는 사람이 없다. 화면 중앙에는 위압적인 붉은 탑이 솟아 있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차가운 아케이드가 화면을 지배한다. 오른쪽 구석의 기마상 실루엣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 동상으로 추정되지만,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박제돼 있다.

시민의 열기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권력과 체제를 상징하는 거대 구조물이다. 특히 화면을 압도하는 탑의 핏빛 붉은색은 공간 전체에 기묘한 긴장과 불안을 불어넣는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 현실이 문득 낯설어지는 순간, 숨겨진 수수께끼를 포착하려던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1913년 파리 전시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작가 생애 최초로 팔렸고, 훗날 초현실주의 미술을 여는 거대한 신호탄이 됐다.

흥미로운 건, 110여 년 전에 그려진 이 쓸쓸한 풍경이 오늘날 도시의 광장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이다. 광장은 점차 시민의 소통과 휴식처이기보다, 거대한 랜드마크 조형물과 매끄러운 도시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와 자본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광장 한복판을 차지하는 거대한 조형물들은 시민을 환대하기는커녕 때로 압도하고 통제한다.

사람이 밀려난 공간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그저 차가운 기념비들의 집합소일 뿐. 데 키리코의 텅 빈 광장은 시대를 뛰어넘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광장은 과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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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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