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보수진영 일각의 관심사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아스팔트 보수를 대표하는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실제로 국민의힘 후보 표를 얼마나 잠식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황 후보는 국민의힘 밖 강성 보수 인사 중 가장 인지도가 높아 이들 세력의 ‘득표력 상한선’을 볼 기회였다.
당초 강성 보수 세력에 꽤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장동혁 지도부는 유 의원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라는 강한 상대가 있는 데다, 황 후보가 유 의원의 보수표를 상당 부분 나눠 가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표 결과를 보니 황 후보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는 6.19%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태극기 세력 중 가장 득표력이 높을 거라고 본 황 후보의 득표가 유 의원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사실 21, 22대 총선 등 두 번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경험으로 강성 보수 역시 실제 선거에선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 투표를 우선으로 한다는 점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합리적 보수 세력이 장동혁 지도부에 강경 보수층에 편향된 행보 대신 중도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배경이었다. 개혁 보수를 표방하는 유 의원의 승리는 국민의힘이 어떤 전략을 펴는 게 합리적인지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진보 진영은 평택을 선거를 ‘뉴이재명’을 표상하는 김 후보와 친문(친문재인)계 적자이자 민주당보다 더 선명한 진보를 추구하는 조 후보 간의 경쟁, 즉 진보 내 세력 간 헤게모니 대결의 관점으로 대했다. ‘내전’에 치중한 두 ‘외지인’은 엄연한 지역구 선거에서 지역 현안은 뒤로한 채 과격한 네거티브전에 몰두했다. 평택을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기지, 경기도 유일 국제 무역항, 미군기지, 전통적인 농촌지역이 혼재돼 있어 인구 구성과 산업 특성이 그 어느 곳보다 복합적인 곳이다.
두 후보는 외지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구 특성에 맞는 정책 선명성 대결을 벌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세력 간 자존심 싸움에 함몰되며 ‘가짜 민주당’, ‘철새 정치인’ 같은 정체성 공방과 ‘대부업체’, ‘사법리스크’ 같은 개인 신상 공격에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
분명 유 의원의 승리는 진보 진영의 표 분산이 핵심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유 의원이 선거 내내 합리적 이념 위치를 유지하면서 네거티브 대신 광역교통망 확충, 정주여건 개선 같은 실리적 지역발전론을 앞세웠던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결과를 미뤄 보건대 현실을 사는 유권자들은 여의도 정치인들처럼 이념이 과잉돼 있지도 않고, 세력 간 자존심 대결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모처럼 있었던 ‘한국 정치 축소판’ 선거 결과의 의미를 여야 정치권 모두 새겨야 한다.김준일 정치부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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