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일제가 편찬한 ‘고종실록’… 그대로 읽는 나라의 國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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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사망한 뒤 실록청을 설치해서 썼다. 고종과 순종 시대의 실록은 일제가 편찬했다. 수록된 사료는 침략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취사 선택됐다. 조선이 신문물 수용의 창구로 미국을 주요하게 고려했음에도, 실록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원문만 실려 있다. 그에 반해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는 관련 문건이 네댓 개나 올라 있다. 조선이 스스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찾기 어려운 이 실록을, 오늘날도 적지 않은 이들이 찾아 읽는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팀이 이들 실록을 보완 및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누락된 근대 공문서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고 공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교육부 예산을 받아 2024년 시작은 했지만 인력이 충분치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원래 10년 기한으로 연 10억 원의 예산을 신청했는데, 5억 원만 반영된 탓이다. 그나마 눈 밝은 이들이 예산을 절반이라도 살린 덕에 사업이 닻을 올린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지만 계획대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가운데 역사 분야 연구와 자료 수집 및 보존 등에서도 차질이 빚어졌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관련 기관도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도서관 운영 프로그램 예산은 지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21%를 삭감했는데, 올해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국가지식문화유산의 전승’을 첫째 사명으로 하는 이 기관의 고문헌과 근대문헌 수집 예산도 해마다 깎여 올해는 2023년(13억6000만 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그 결과로 2024년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이 경매에 나왔지만 중앙도서관은 응찰도 할 수 없었다. 올해엔 보물급인 ‘이복근 정사공신녹권’의 감정평가를 받고 1억6800만 원에 소장자로부터 매도 동의까지 받았는데, 예산이 없어 막상 계약은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내년 예산은 더욱 깎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매수가 아예 무산될지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한다.

귀중 자료의 복원 및 보존 처리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엔 양장본(洋裝本)과 동장본(東裝本)을 통틀어 지류 복원 담당 학예사가 딱 1명 있다. 그나마 보물 등으로 지정된 고문헌이 작업의 우선순위에 놓이니, 산성화에 취약한 근대 문헌은 오늘도 그냥 바스러져 간다. 우리의 중앙도서관 격인 일본 국회도서관엔 양장본 6명, 동장본 4명 등 복원 담당자가 총 10명이 있다. 담당자 수가 10 대 1이다. 국격(國格)의 차이는 이런 데서 난다.

일본 총리가 독도를 두고 “일본의 영토라는 인식을 국제 사회에 알려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어떨까. 역시 지난 정부의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2024년 사업비가 전년 대비 27% 줄었는데, 올해 예산도 거기서 고작 2.3% 늘어난 수준이다. 이번 정부는 출범 1주년을 앞두고 ‘연구생태계 복원’을 성과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아마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된 얘기가 아닌가 한다. 미래 먹거리도, 인공지능(AI)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마침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성찰하는 데도 적절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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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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