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자산 제도화 가속 “경쟁력 확보 위한 명확한 규제 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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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한만혁 기자] 디지털자산이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차세대 금융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제와 송금 효율성을 높이고, 실물자산 토큰화를 통해 투자 문턱을 낮추는 등 금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에 블랙록,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사는 디지털자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주요국은 디지털자산 규제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6월 22일 디지털자산 글로벌 제도화 동향과 국내 입법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국회 세미나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이강일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타이거리서치가 주관한 이번 세미나는 글로벌 규제 및 입법 동향을 공유하고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토큰증권 규제 설계, 금융기관 역할 정립, 블록체인 인프라 정책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논의하며,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명확한 규제 체계를 조속히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제도화 동향과 대한민국 입법 동향’ 세미나 현장 / 출처=IT동아‘글로벌 디지털자산 제도화 동향과 대한민국 입법 동향’ 세미나 현장 / 출처=IT동아

안도걸 의원은 “글로벌 시장은 디지털자산이 미래 금융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주요국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라며 “하반기 국회에서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에 속도를 내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신뢰를 확보하면서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겠다. 디지털자산이 실물 경제에 활용되고 금융 인프라로 발전하도록 제도 정비도 추진하겠다”라고 전했다.

김종현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은 “디지털자산 제도화는 단순히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혁신과 금융 안전성을 함께 담보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 국내 금융 환경에 맞는 정교한 입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클래리티·지니어스 법으로 규제 체계 구축

이날 세미나에서 밀러 화이트하우스레빈(Miller Whitehouse-Levine) 솔라나 정책연구소 CEO는 미국 디지털자산 입법 동향에 대해 설명했다. 화이트하우스레빈 CEO는 미국 클래리티(CLARITY) 법안 등 주요 디지털자산 입법 방향을 현장에서 이끈 정책 전문가다.

화이트하우스레빈 CEO에 따르면 미국은 디지털자산 규제를 두 개의 트랙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시장 구조 전반을 다루는 클래리티 법안이고, 다른 하나는 스테이블코인 규제인 지니어스(GENIUS) 법이다.

클래리티 법안의 핵심은 디지털자산을 증권과 상품이라는 두 가지 법적 범주로 명확하게 구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증권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품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각각 감독하는데, 기존에는 디지털자산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불분명해 기업들이 사전에 어떤 규제를 따라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클래리티 법안은 이 문제를 ‘통제권’ 기준으로 해결한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실질적으로 통제한다면 해당 자산은 증권으로, 네트워크가 탈중앙화되어 있다면 상품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는 증권법의 존재 목적이 투자자 보호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기업의 통제 권한이 많은 경우 투자자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탈중앙화가 충분히 되어 있다면 증권법상 의무를 완화하는 것이다.

밀러 화이트하우스레빈 솔라나 정책연구소 CEO / 출처=IT동아밀러 화이트하우스레빈 솔라나 정책연구소 CEO / 출처=IT동아

주목할 점은 동일한 디지털자산도 시간이 지나면서 법적 성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증권으로 규제받더라도, 네트워크가 점차 탈중앙화되면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다. 클래리티 법안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탈중앙화 여부를 판단한다.

또한 클래리티 법안은 디지털 상품의 현물 시장에 연방 차원의 감독 체계를 처음으로 도입한다. 법안은 CFTC에 현물 시장 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시장에서 활동하는 거래소, 브로커, 딜러에게 등록 의무를 부과한다. 이와 함께 기존 금융기관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 자산의 토큰화도 허용한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인 지니어스 법은 2025년 7월 제정된 미국 최초의 연방 차원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다. 법에 따르면 모든 스테이블코인은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으로 1:1 비율의 담보를 갖춰야 하며,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인허가, 준비금 상환 절차, 자금세탁 방지 등 세부 시행 규정을 마련 중이며, 대부분의 규정이 2026년 7월까지 완성되고 늦어도 2027년 1월까지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화이트하우스레빈 CEO는 “미국은 클래리티 법안과 지니어스 법을 통해 개별 사건에 대한 사후적 집행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성문 규제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미국의 경험이 한국의 입법 논의에도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제도 불확실성이 국내 기업 발목, 명확한 규제 체계 필요

패널 토론에 참여한 참석자들은 시장의 혁신성을 확보하면서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전통 금융기관의 역할 명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미국의 경우 클래리티 법안을 통해 은행이 기존 라이선스를 유지한 채 별도 라이선스 없이 업무 확장이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 업무를 어떤 범주에서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김효봉 변호사는 “현재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상황”이라며 “필요한 라이선스, 가능한 영역 등 규제 명확성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출처=IT동아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출처=IT동아

토큰 증권에 대해서는 해외 접근 방식을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은 국채, 상장지수펀드(ETF) 등 유동성이 풍부한 정형증권 위주로 토큰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 역시 안전성과 유동성이 높은 자산부터 단계적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효봉 변호사는 “채권, 머니마켓펀드(MMF), 펀드 등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가능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을 우선 토큰화하는 방향이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제한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국은 누구나 참여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허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제한된 참여만 허용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김효봉 변호사는 “프라이빗 블록체인만 허용하면 블록체인 활용의 효율이 크게 줄어든다”라며 “효용이 없으면 제도를 새로 도입할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김윤경 인천대 교수 / 출처=IT동아김윤경 인천대 교수 / 출처=IT동아

김윤경 인천대 교수는 제도적 불확실성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윤경 교수는 최근 글로벌 기업이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인수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언급하며 “글로벌 기업들은 안정적인 규제 환경 아래 다양한 사업 모델을 실험하고 역량을 쌓을 수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제도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새로운 사업 영역 확장에 제약받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김윤경 교수는 “디지털자산은 증권, 상품, 데이터 인프라 성격이 중첩되는 영역으로, 어느 하나의 전통 금융 규제 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라며 “현행 국내 입법 논의가 이해관계 조정에 머무르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법령상 금지되어 있지 않더라도 감독 관행이나 인허가 제한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는 ‘그림자 규제’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경 교수는 “입법과 제도화가 지연될 경우 국내 산업 발전이 늦어질 뿐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금융 규범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영향력도 약화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용재 미래에셋증권 본부장 / 출처=IT동아이용재 미래에셋증권 본부장 / 출처=IT동아

이용재 미래에셋증권 본부장은 “명확한 제도의 미비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라며 명확한 규제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실효성 있는 제도화를 위해서는 우선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의 분리)를 철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 기술은 금융을 혁신하는 기술인데, 해외는 금융과 가상자산의 융합으로 가는 반면 국내는 분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금가분리가 해소되면 금융 대기업, 스타트업, 웹3(Web3) 기업들이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혁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토큰화 대상 제한에 대해서는 글로벌 주요국의 선례를 따라 MMF, 채권부터 시작해 국내 사정에 맞는 프로세스를 갖춰 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용재 본부장은 “기존 자본시장법에 무리하게 끼워 맞추는 형태로 블록체인을 활용하게 하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라며 “혁신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조속한 입법이 관건

이번 세미나는 글로벌 디지털자산 제도화의 흐름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미국이 클래리티 법안과 지니어스 법을 통해 명확한 성문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일본, UAE 등도 입법을 선행한 뒤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도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세미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조속한 제도화를 촉구하며 실효성 있는 규제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는 규제 체계, 토큰화 자산의 범위, 금가분리 철폐, 퍼블릭 블록체인까지 허용하는 유연한 인프라 정책, 그림자 규제 없이 사업 허용 범위를 명시하는 입법 설계 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제는 논의를 넘어 입법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의견이 모인 만큼 하반기에는 가시적인 제도 추진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이제는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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