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BTS의 일본 아리랑 공연 직후에 일본을 다녀왔다. 한국경제인협회와 일본 게이단렌이 공동 주최한 ‘복합위기 시대의 한일 신(新)경제협력 세미나’에는 한일 양국에서 10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나라 모두 내부적으로 저출생·고령화와 내수시장 제약에 직면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중동전쟁, 보호 무역주의 강화,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불확실한 글로벌 환경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둘 다 제조업·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이고,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한국은 70%, 일본은 94%에 이를 정도로 대외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이처럼 비슷한 구조 때문에 경쟁 관계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요동치는 국제정세에서 전략적 협력을 통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기회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 사례는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준다. 각종 분쟁과 전쟁의 원인이던 석탄과 철강 생산을 공동 관리하며 유럽석탄철강기구가 출범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EU)이 출범했다.
한일 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3위, 교역액은 세계 4위가 된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그런데도 지난해 한일 양국의 상호 교역과 투자 규모는 각각 전체의 5%와 1.5% 수준에 불과했다. 상호 협력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타트업과 양국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K-소비재, 반도체, 에너지, 물류 등 유망 분야에서 협력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도쿄에서 만난 한 청년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내 K-뷰티, K-패션의 인기를 비즈니스 기회로 살리기 위해 수년 전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다.
한일 간 지리적 인접성을 활용한 협력 기회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석유제품 등 운송비가 큰 제품은 일본 내의 육로로 수송하기보다 한국 동해안에서 일본의 주요 항구로 해상 운송하는 편이 물류비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제조업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도 일본 소부장 기업들은 한국 투자를 통해 양국의 공급망 협력을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전후 70여 년의 자유무역과 다자체제를 유지해온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는 시점에, 양국은 브레튼우즈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책임 있는 미들파워 국가로서 국제공조를 강화할 때다. 정부는 디지털, 공급망, 에너지, 무역, 투자 등 두 나라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하고, 협력 가능성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의 기업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은 두 나라에서 모두 즐겨 쓰인다고 한다. 이웃 일본과 경제·통상 협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의 높은 파고를 함께 헤쳐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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