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 속 주인공 마틸드 루아젤에게 10년간의 삶은 무척이나 잔혹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 궂은일을 가리지 않은 탓에 그의 아름다운 외모는 지독한 가난에 찌든 할머니처럼 변했다.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에게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분실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잃어버린 목걸이가 모조품인지도 모른 채 3만6000프랑짜리 진짜 목걸이를 사서 돌려준 뒤부터 그의 삶에는 오직 빚을 갚는 일만이 존재했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무서운 빚’이라는 표현은 마틸드가 처한 절박하고 섬뜩한 처지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모파상이 활동하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목걸이’의 독자는 소설 속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낀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당위를 모두가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당연하게 여기던 이 ‘채무는 갚아야 한다’는 명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책당국자가 앞장서서 금융업에 ‘잔인한’이라거나 ‘약탈적’이라는 감정 섞인 수식어를 붙이고 나서부터 벌어진 일이다.
어느덧 대출 연체는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총출동해서 신용 체제 개편을 검토하고 저신용자에게 ‘포용적 대출’을 열심히 한 금융사 직원의 면책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런 신호가 곳곳으로 퍼지면 금융 취약자에겐 빚을 못 갚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을 넘어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입장을 바꿔보면 빌려준 돈을 떼인 것만큼 당혹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법대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면 배려심 없는 사람으로 몰릴 뿐이다.
물론 ‘잔인한 금융’이라는 인식이 왜 나왔는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법의 기준을 넘어선 고율의 이자와 불법 추심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금융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정이 딱한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불법을 교정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칙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그것도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감성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구분만 희미해질 뿐이다. ‘신용이 높을수록 이자율이 낮아진다’는 사회적 합의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미 저신용자가 고신용자보다 더 낮은 대출 금리를 적용받는 ‘금리 역전’ 현상은 낯설지 않다. 하나은행의 지난 3월 최저신용자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연 3.73%로, 최고신용자(연 4.86%)보다 1.13%포인트 낮았다. 5대 시중은행은 경쟁적으로 최저신용자 대출금리를 낮추고, 고신용자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성실하게 돈을 갚고 본인의 신용도를 높이려고 할까. 신용도는 대출 여부와 대출 규모, 금리를 결정하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핵심 기준인데, 이를 섣불리 손보는 것은 무리수가 될 확률이 높다.
이자는 돈을 빌려준 사람의 기회비용에 대한 대가이며 돈을 떼일 위험에 대한 방어책이다. 이런 이자가 제 기능을 못하면 금융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개인 차원에서도 금융권에서 대출받으려면 복잡한 약정을 읽고 꼼꼼하게 이자율을 확인한다. 차주 본인은 ‘이런 조건을 알고 있고 감내하겠다’는 의미로 직접 서명을 한다. 금융 시스템 안정 차원에서든, 개인의 신용 차원에서든 ‘계약은 준수돼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까지 흔들려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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