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꽤 운이 좋은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데도 반도체 슈퍼사이클 효과가 다른 모든 부정적 요인을 집어삼키는 양상이어서다. 실력과 노력이 중요하지만 국정 운영이 성과를 내고 탄력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는 운이 따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글로벌 관세 전쟁 충격에다 유가 급등을 부른 미·이란 전쟁,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대외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 상황이다. 하지만 질주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워 코스피지수는 어느덧 8000을 넘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6월 4일 지수가 2770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부·여당의 법·제도 정비 효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반도체 초호황 덕분이다. 전쟁이 초래한 군비 확장 경쟁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 힘입어 날아오른 조선·방위산업·전력기기도 상당한 힘을 보탰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경제성장률과 수출 증가율을 끌어올리고 경상수지 흑자 및 국가 세입 규모까지 늘리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전기 대비 1.7%로 깜짝 발표한 뒤 성장률에 대한 기대도 크게 높아졌다. 3% 이상 성장률 전망도 심심찮게 들린다.
수출과 경상수지 흑자도 유례없이 증가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 부담이 여전히 크고 중동 전쟁 탓에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이 타격을 받는 상황이지만, 초유의 반도체 호황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증권사 평균치로 보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340조원, SK하이닉스는 248조원이다. 두 기업을 합하면 588조원에 달하고, 내년에는 768조원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기업 이익이 증가하면 법인세 부담도 늘어난다. 지난해 85조원 정도이던 법인세 세수가 올해 120조원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다 반도체 성과급 등의 소득세 증가분과 증시 활황에 따라 늘어날 증권거래세를 합하면 초과 세수는 훨씬 많아진다.
정부에선 더 걷히는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행복한 고민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얼마 전 SNS에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우리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 세수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는 의당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썼다.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 세수가 원칙 없이 소진된 것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재정을 지나치게 아끼다 보면 재량 지출 투자가 줄어 오히려 세수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확장재정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과 세수를 제대로 쓰는 것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정부가 먼저 할 일은 올해와 내년의 세수 호황이 일시적인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제대로 살피는 것이다. 예상을 웃도는 다양한 거시와 미시 경제지표도 마찬가지다. 경기지표 반등이 경제 체질 개선에 따른 성과인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체질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든 꺾이기 마련이다.
청년 취업률 하락에서 보듯 고용시장에 한기가 가득하고 대다수 자영업과 중소기업 경기도 악화일로다.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 추세도 그대로다. 대기업도 반도체와 조선·방산·전력기기를 제외하면 고군분투하는 곳이 많다. 슈퍼사이클이라지만 반도체 역시 조정받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재정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와 함께 구조적인 경제·사회 문제를 개혁하는 데 써야 한다. 그래야 세입 기반을 넓히고 잠재성장률도 올릴 수 있다. AI 인프라와 에너지·원자재 공급망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교육·공공부문 개혁, 복지지출 전반의 효율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과거처럼 구조개혁이 골치 아프다고 또다시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2년간 초과 세수가 110조원을 웃돌았던 2021~2022년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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