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코로나 방역 차단벽에 막혀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며 10명이 사망했다. 마침 개막한 카타르 월드컵 중계화면엔 수만 명의 관중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환호하고 있었다. 누적된 불만은 결국 폭발했다. 상하이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퍼졌고, 봉쇄 해제를 넘어 시진핑 퇴진을 외치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중국 정부는 3년 가까이 고수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전면 폐기했다. 2년 뒤, 그 중국에서 인공지능(AI) 딥시크가 등장했다. 최근 발표된 스탠퍼드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규제에도 미중 간 AI 모델 성능 격차는 2025년 초 31.6%포인트에서 2.7%포인트로 좁혀졌다.
혁신을 길들인 국가
경직된 정치 체제가 기술 혁신을 낳는 아이러니. 중국은 새뮤엘 헌팅턴이 말한 ‘왕의 딜레마’, 즉 통제를 강화할수록 혁신이 위축되는 딜레마를 해결한 것일까? 빅데이터로 무장한 스마트 권위주의는 코로나 기간 시험대에 올랐다. 무리한 전면 봉쇄는 민심의 폭발로 이어졌다. 빅테크 규제가 더해지며 실망한 자산가들은 중국을 떠났고, ‘차이나 피크’론이 확산됐다.
중국 공산당은 빠르게 교훈을 흡수했다. 통제 방식은 더 정교해졌고, 기술 자립 목표 아래 시장 혁신 역량을 다시 키웠다. 기업가 풀도 달라졌다. 알리바바의 마윈으로 대표되던 ‘맨땅에 헤딩’ 유형 대신, 딥시크의 량원펑 같은 이공계 천재들이 부상 중이다. 국가가 천재 기업가를 직접 길러낸다.
게다가 미국이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 줄서는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 중국 기업가에겐 익숙한 장면이다. ‘미국도 별거 없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통제의 최대 희생양이던 알리바바는 정부 방침에 맞춰 AI 기업으로 재부상 중이고, 딥시크 창업자 세대는 정부 개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스마트 권위주의는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경쟁 체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의 120여개 개발도상국인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보조금과 핵심 기술 통제 등으로 국가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중국이 추격을 넘어 혁신을 선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반도체 등 전략 산업 밖에서는 불만과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드러났듯 정치적 오판 리스크도 여전하다.
이념보다 실행이다
한국은 후발 주자로 권위주의를 극복한 몇 안 되는 나라다. 그 토대 위에 키워낸 창의성은 ‘K컬처’로 꽃피웠다. 중국과의 결정적인 차별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의 레퍼런스인 미국마저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다. 중국은 빠르게 우리 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미·중 경쟁은 반도체·방위산업·조선 등에서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는 인허가와 지역 갈등 탓에 착공이 수년 지연됐고, 삼성전자는 노사 간 성과급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는 국가 총력 지원 아래 3년 만에 D램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기회를 살릴지 허비할지는 결국 우리 몫이다. 체제의 우월성은 이제 선언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능의 면죄부로 전락하는 순간 더 큰 비극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김영수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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