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석유 최고가격제, 헝가리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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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석유 최고가격제, 헝가리가 남긴 교훈

정부가 가격 상한을 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 원조는 헝가리다. 2021년 11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감소와 통화 약세, 물가 상승 등에 직면한 헝가리 정부는 가계 부담을 낮추겠다며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도입했다. 주변국이 유가 상승에 유류세 인하, 에너지 바우처 지급 등 간접 지원으로 대응한 것과 달리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결과는 정부 의도와 달랐다. 석유 수요가 폭증하고 공급이 급감해서다. 석유 가격이 낮게 유지되자 연료를 미리 확보하려는 사재기가 일어났다. 주변국에선 국경을 넘어 연료를 사가는 차량까지 몰렸다. 2022년 헝가리의 분기별 연료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0~30% 증가했다.

가격 통제하자 부작용 불거져

공급 측면의 충격은 더 컸다. 국제 유가가 오르는데 판매 가격은 제자리걸음을 하자 정유 업체들은 원유 수입을 주저했다. 주유소 역시 판매를 제한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주유소 앞에는 연료를 확보하려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헝가리 정부는 결국 2022년 12월 석유 최고가격제를 폐지했다. 헝가리 중앙은행은 당시 “기업들이 가격 통제로 발생한 손실을 다른 품목 가격 인상으로 만회하는 현상이 나타나 전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었다”며 “가격 통제는 인플레이션 억제의 해법이 아니었다”고 반성문을 썼다.

[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석유 최고가격제, 헝가리가 남긴 교훈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한국 정부도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 카드를 꺼냈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농민, 생계형 운전자 등 에너지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에서다. 국제 유가 상승 속도보다 더 빨리 가격을 올린 정유사와 주유소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겼다.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시장 반응은 정책 의도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차량 2부제와 5부제 등 민관의 에너지 절감 노력에도 석유 수요가 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석유관리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최고가격제 도입 직전인 3월 2주 차 대비 4주 차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은 각각 24.7%, 16.4% 증가했다. 석유 재고를 쌓아두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낮은 가격 때문에 기름을 아낄 이유도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정유사 부담액 상당할 듯

정부 통제 속에 시장 가격과 고시 가격 격차는 상당히 벌어졌다. 이 기간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는 각각 10.1%, 9.3% 상승했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L당 1891.60원에서 1819.23원으로 3.8% 하락했다. 경유 역시 5.6% 떨어졌다.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3월 4주 차 휘발유 가격은 L당 1950원대, 경유는 L당 2400원대까지 올랐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유사 손실도 늘고 있다. 3월 4주 차 휘발유·경유 사용량에 석유 할인 금액을 고려한 정유업계 손실은 2000억원 안팎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정유사 손실 금액 피해 보상을 약속한 만큼 국가 재정도 일부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통제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유사와 정부가 내야 하는 금액은 수천억원 단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격 통제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헝가리 사례가 보여주듯 가격을 억제하는 순간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고 공급은 손실 회피를 위해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사재기’, 공급 부족 등 비정상적 신호로 나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고유가 피해가 큰 계층을 중심으로 가격을 인하하고 시행 기간과 종료 요건 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의 세밀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가격을 잡으려다 시장을 놓친 헝가리의 실패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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