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3.0] 인쿠시 "한국 배구는 제 운명…'긍정의 힘'으로 귀화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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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망주에서 '국민 희망'으로, 인쿠시가 꿈꾸는 다문화 상생의 코트

'신인감독 김연경'이 일깨운 긍정의 미학…"더 단단한 '아웃사이더' 될 것"

"열심히 하면 기회는 온다"…다문화 청춘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리시브'

이미지 확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인쿠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인쿠시

(대전=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지난달 1월 31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인쿠시. 2026. 1. 31. seva@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김연경 감독님을 통해 배구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긍정의 태도'를 배웠죠. 때로는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아픈 말도 듣지만,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의 따뜻한 진심이 있기에 오늘도 한국인으로서의 내일을 꿈꾸며 배구화 끈을 묶어요."

최근 배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인물을 꼽으라면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인쿠시(몽골명 자미얀푸렙 엥흐서열)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몽골 출신의 유망주로 한국 땅을 밟은 지 어느덧 4년 차.

그는 최근 방영된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았고, 대전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할 만큼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로 거듭났다.

인쿠시가 '신인감독 김연경'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우연인 듯 운명적이었다. 작년 여름, 목포과학대학교에서 훈련에 매진하던 중 지도자로부터 "김연경 선수가 은퇴 후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려 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만 해도 완전한 예능 프로그램인 줄은 몰랐다. 그저 '우상'인 김연경이 감독으로서 배구를 가르쳐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MBC와의 사전 인터뷰를 거쳐 이틀간의 치열한 트라이아웃을 통과한 끝에 그는 당당히 팀의 일원이 됐다.

수개월간 김연경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인쿠시는 기술적 성장 이상의 것을 얻었다. 그는 김연경을 "순수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선수로서도 대단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분이에요.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죠."

무엇보다 큰 수확은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인쿠시는 과거 '실수가 나오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했던 습관을 고백했다. 하지만 김연경 감독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된다"며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입했다. 덕분에 프로팀의 디테일한 전술과 기본기를 익히는 과정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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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푸는 인쿠시

(김천=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지난 3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프로배구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경기. 정관장 인쿠시가 몸을 풀고 있다. 2026.2.3. mtkht@yna.co.kr

인쿠시의 배구 DNA는 모계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몽골 국가대표 출신의 유명 배구 선수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체육관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배구공과 친해졌다. 몽골에서는 클럽 형태로 배구를 접하며 중학교 무렵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한국행을 결정한 것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다니던 배구 클럽의 사장이 한국인이었는데, 그가 인쿠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한국 유학을 권유했다.

"처음엔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어요. 하지만 부모님과 상의 끝에 '딱 1년만 가서 선진 배구를 배우고 오자'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그렇게 도착한 곳이 전남 목포였다. 낯선 타국 땅이었지만, 앞서 한국에 진출해 있던 체웨랍당 어르헝 선수 등 몽골 출신 선배들이 있었기에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 목포여상과 목포과학대를 거치며 그는 한국의 강도 높은 훈련 시스템에 적응해 나갔다.

숙소 생활과 방대한 운동량은 몽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체육관과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 등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한국의 환경은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인쿠시는 이제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한다. 어학원을 다닌 적도 없다. 오로지 코트 위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몸으로 익힌 결과다.

"1학년 때는 한마디도 못 했어요. 2학년 올라가는 겨울부터 자유시간마다 틈틈이 공부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배웠죠." 이제 그는 몽골어와 한국어, 그리고 약간의 영어까지 구사하는 '3개 국어 능력자'가 됐다.

이미지 확대 득점 후 기뻐하는 정관장의 인쿠시

득점 후 기뻐하는 정관장의 인쿠시

(서울=연합뉴스) 19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정관장과 GS[078930]칼텍스의 경기. 정관장 인쿠시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2025.12.19 [한국배구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하지만 한국 생활이 늘 장밋빛인 것은 아니었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 중인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며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 특히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쏟아지는 비난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무게였다.

"SNS 메시지로 '네 나라로 돌아가라', '못한다'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이 올 때가 있어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유명해지면 멘탈 관리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그런데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팬들의 진심 어린 응원이다. 홈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는 그는, 경기가 풀리지 않은 날에도 "괜찮다,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주는 팬 서비스 현장에서 가장 큰 힘을 얻는다.

인쿠시의 앞날에는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이 남아 있다. 프로 선수로서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기 위해서는 귀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 거주 5년 조건을 채운 뒤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현재 부모님과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계속 배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 정관장에서의 여정은 곧 마무리되지만, 그의 배구는 멈추지 않는다. 시즌이 끝나면 다시 대학교로 돌아가 대학 리그를 준비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계획이다. 특히 '아웃사이더 히터'(날개 공격수) 포지션으로서 기본기와 수비력을 더 탄력 있게 다듬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그는 한국의 어떤 점이 가장 좋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사람'을 꼽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이에요. 서울의 화려함보다, 목포에서 먹던 보쌈과 삼계탕, 곰탕 같은 따뜻한 한식과 '정'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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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브하는 인쿠시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5일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경기. 정관장 인쿠시가 리시브를 하고 있다. 2025.12.25. xanadu@yna.co.kr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인쿠시는 자신을 받아준 한국 사회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정관장 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까지 찾아와 주시는 팬분들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팬분들에게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경기할 거예요. 좋은 사람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받은 사랑을 코트 위에서 실력으로 갚아나가고 싶습니다."

비난의 화살 앞에서도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 한다"며 웃어 보인 인쿠시. 몽골에서 온 이 이방인 선수가 한국 배구계에 던지는 스파이크는, 단순한 득점을 넘어 편견을 깨고 공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울려 퍼지고 있다.

phyeons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2월16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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