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상수지 흑자의 역설

4 days ago 9

[다산칼럼] 경상수지 흑자의 역설

과거엔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과도한 경상흑자를 더 이상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흑자가 지나치면 다른 나라 산업과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상수지 불균형이 국제 갈등으로 번질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대표 사례가 중국이다. 중국의 2025년 경상수지 흑자는 1조2000억달러다. 세계 최대 규모다. 국내총생산(GDP)의 5~6%다. 반면 미국은 경상 ‘적자’ 비율이 2019년 2.1%에서 최근 4%로 두 배로 확대됐다. 중국 경제는 소비보다 생산과 투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민간소비가 GDP의 40% 수준이다. 미국(68%)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 총저축률은 GDP 대비 40%대 중반으로 미국의 두 배를 웃돈다. 저축은 과도하고 소비는 부진하다. 경상흑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방 주요국과 국제기구 등은 중국 경상흑자 급증이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에 소비 진작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 내수 확대를 강하게 권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월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가 발간한 ‘파리 리포트’도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글로벌 불균형이 국가 간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커졌다며 즉각적 대응을 주문했다. 올해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글로벌 불균형 이슈가 주된 의제로 다뤄진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중국뿐 아니라 흑자국 전반으로 견제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3월 경상흑자(373억달러)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말 한국 경상흑자가 GDP 대비 9% 안팎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인공지능(AI) 서버, 첨단 반도체 수출 급증 영향이다. 한때 자랑거리이던 경상흑자가 이제는 국제적 압박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는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3%를 초과하는 국가를 모니터링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상수지 4% 룰’을 제안하며 중재에 나선 나라다. 올해 G20 회의에선 ‘글로벌 불균형 스터디그룹’ 공동의장국도 맡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을 쳐다보는 국제사회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최근 원화 약세가 외환당국의 의도적 방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규모 경상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현상에 미국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달러 매도와 한국은행·국민연금 외환스와프 등을 통해 원화 약세 압력 완화에 힘써왔다.

중국과의 차별화를 명확히 하는 것도 포인트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미국 내 생산 및 투자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때마침 6월 출범하는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경상흑자를 미국 산업·공급망 투자로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미국 산업 재건에 기여하는 한·미 동맹의 전략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내수 기반 확충에 더 힘써야 한다. 한국 민간소비 비중은 GDP의 48%다. 중국보다 높지만 G20 국가 평균(59~60%)에 크게 못 미친다. 어떻게 하면 대규모 경상흑자가 낙수 효과를 통해 민간소비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로를 만들 수 있는지? 최근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가 소비로 이어질 수 있을지? 가계부채를 줄이면 소비가 회복되는지?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

경상흑자의 질(質)도 달라져야 한다. 상품 수출 위주의 ‘몰빵 흑자’는 국제 마찰을 키울 소지가 있다. 파리 리포트도 일본 경상흑자 확대를 언급했지만 이를 심각한 문제로 다루진 않았다. 제조업 수출보다 해외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 수입 중심으로 경상흑자 구조가 재편됐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다. 수출은 선(善), 수입은 악(惡)으로 보는 중상주의적 사고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과도한 흑자는 내세울 성과가 아니다. 국제 정치 리스크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