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석유화학 사업재편 성공을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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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석유화학 사업재편 성공을 위한 조건

지난달 말 한국경제신문 단독 보도로 알려진 ‘석유화학 구조조정 1호’ 빅딜은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롯데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11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용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을 전격 중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같은 단지에 공장을 둔 경쟁사 HD현대케미칼과 협상을 벌인 끝에 내린 결단이어서 더 그랬다.

두 회사의 빅딜은 국내 기업 구조조정사(史)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 따른 공멸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정상 기업 두 곳이 함께 선제적 구조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통상 생산설비 통폐합 등은 부도 위기에 내몰리거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에 맞닥뜨린 기업이 해오던 사업재편 방식이다. 민간 기업이 정부와 힘을 합쳐 자율적 구조조정에 나선 첫 사례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업계 선두 업체인 롯데케미칼이 먼저 구조조정의 서막을 올린 것도 이례적이다.

버티면 된다는 희망회로 접고

산업계 안팎의 시선은 여수와 울산 등 다른 주요 석화단지로 쏠리고 있다. 대산처럼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해당 단지에 있는 기업과 채권단, 정부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다.

기업들의 속내는 여전히 복잡하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여천NCC는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불협화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업재편은커녕 에틸렌 판매 가격을 놓고 티격태격 중이다. 울산에선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 3사가 외부 컨설팅기관 자문을 통해 사업재편안을 조율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일부 설비의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기업들은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것이란 희망회로를 돌리는 분위기다.

정부는 조급해하고 있다. 기업마다 사정을 봐주고, 예외를 두면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게 뻔해서다. 채권단도 속을 끓이긴 마찬가지다. 여수와 울산에 있는 기업들이 제대로 된 자구노력 계획은 내놓지 않고 ‘뉴머니’(신규 자금) 타령만 한다며 답답해한다.

선거판 전에 구조조정 윤곽 잡아야

이번 석화 사업재편의 성공을 위한 기본 원칙은 선명하다. 대주주의 책임과 고통 분담 그리고 이에 기반한 기업 경영 정상화다. 석화 기업 대주주는 경쟁력 저하에 대한 책임을 온전하게 져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상증자와 일부 출자 전환, 감자 등을 감내해야 한다. 채권단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다.

채권 금융회사도 신속한 실사를 통해 기존 대출 만기 연장과 신규 자금 투입 등을 결정해야 한다. 서로 채권의 우선순위를 따지고, 투입 자금 규모를 놓고 싸우는 순간 석화 사업재편은 물 건너간다. 정부도 이 과정에서 팔을 꺾는 우격다짐보다는 합리적 소통을 주도하는 중재자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속도감과 질서 있는 사업재편’을 위해선 정치 논리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구조조정 시계를 엉뚱하게 돌리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내년 초 선거판이 벌어지기 전에 여수와 울산의 석화 사업재편 윤곽을 미리 잡아놔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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