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코바(町工場·영세 공장)가 몰려 있는 서울 문래동엔 작은 수제 만년필 제작업체 제나일이 있다. 이 기업은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갑작스레 유명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 방명록에 서명하던 이 회사 펜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탐내면서다. 곳곳에 숨은 ‘K소공인’의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다.
이달 중순 미국 조지아주 한인타운에 마련된 특별판매전에서는 30~40년 경력의 국내 장인들이 만든 공예품, 수제화, 의류 등 컨테이너 하나 분량의 제품이 열흘 만에 몽땅 팔려나갔다. 존 번스 조지아주 하원의장은 행사장을 찾아 국내 소공인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지아주는 400평 규모 한국 소공인 전용 상설관을 설치해 미국에서 명맥이 끊긴 CNC선반, 밀링, 용접 등 제조업의 뿌리 기술을 배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마트 제조 지원혜택 줄어
숙련된 기술력을 갖춘 소공인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에 비해 정작 국내 관심과 지원은 열악한 편이다. 최근엔 소공인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가던 정부 지원 사업 문턱마저 높아져 영세 소공인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소공인 스마트 제조 지원 사업은 상시 근로자 10명 미만 소공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시작됐다. 스마트 장비 가격(최대 6000만원)의 70%를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올해 예산은 총 980억원. 소공인이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지원금이다.
그러나 정부는 보조금 부정수급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올해 지원금을 60%로 줄이고 3년 평균 매출이 2억원 미만인 소공인은 신청 대상 자격에서 아예 제외하겠다는 기준을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지원이 가장 절실한 상당수 애꿎은 영세 소공인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공인 스마트 제조 지원 사업의 부정수급 사례는 2024년 기준 지원 기업(1887개) 중 약 6%(112개)다. 부정수급은 일벌백계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정부 책임도 없지 않다는 게 문제다. 주로 고령층인 소공인이 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 작성 방식이 워낙 복잡해 컨설팅 업자의 개입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부정수급 싹이 자라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는 소공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탁상에서 정책을 설계한 결과다.
인격권 침해 논란도 불거져
부정수급을 방지한다며 도입하는 방식도 논란이다. 지원금을 신청하려면 1분30초짜리 동영상 사업계획서를 촬영하고 ‘부정수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육성으로 진술해야 한다. 소공인들은 번거로운 절차는 둘째치고 자괴감을 호소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텼는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 인격권 침해에 모멸스럽다는 것이다. 소공인들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절박함을 호소하기로 한 이유다.
금속 가공, 부품 생산 등을 담당하는 소공인은 국내 제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모세혈관으로 불린다. 가뜩이나 중국의 공세로 제조업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로 생존 확률이 높지 않은 스타트업에 수억원씩 퍼붓는 창업 지원책과의 불균형도 따져봐야 한다.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교각살우의 더 큰 부작용을 낳는 일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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