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선거에 무관심 선거들 묶어 파는 정당들
공천은 양당 손아귀에, 재정은 중앙에 의존
생활권-행정구역 달라 지방정치 활기 잃어
어떤 지방정부 만들지 근본적 제도 재설계 필요
우리의 지방선거는 그래서 몇몇 관심 선거와 수많은 무관심 선거들을 하나의 번들로 묶은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전국동시’ 지방선거인 것이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우리의 지방선거는 지방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없으며, 항상 전국선거였다. 이번 선거도 결국 전국적인 의제-계엄과 탄핵,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양당이 정치적 지지를 유권자로부터 ‘착즙’하는 선거이고, 역설적이게도 거대 양당의 입장에서는 현명한 선거 전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의 이런 모순들은 투표 참여율에서도 나타난다. 2022년 지방선거는 월드컵 와중에 치른 2002년 선거 이래 최저인 51%로 하락했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는 이미 513명의 출마자가 무투표 당선을 확정 지었으며, 그중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양당 공천자들일 정도로 지방선거의 저변, 즉 ‘풀뿌리’에서는 양당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지방정치의 재정 구조는 또 어떠한가. 우리 지방정부는 자체 재원보다 지방교부세 등 중앙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교육청 또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이전받는다. 문제는 이 재원이 내국세 연동의 법정률 구조로 자동 배분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전되는 거대한 재원에 상응하는 책임과 통제의 구조가 지방정치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우리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항상 지방자치 조문들을 품고 있었다. 5·16 이후 지방의회가 해산되고 지방자치가 장기간 중단됐던 아픈 역사도 있다. 지방자치의 부활이 1987년 6·29선언에 포함될 정도로 민주화의 핵심 의제였고, 1990년대 지방선거로 부활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한국의 지방자치는 민주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눈을 현재로 돌려보면, 지방선거와 지방정부만큼 불만과 걱정을 모으는 것도 없다. 전국선거로 변질된 지방선거의 구조, 양당 독점의 공천 체제, 중앙 의존적 재정 구조, 그리고 생활권과 어긋난 행정구역 체계가 함께 지방정치의 활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나는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영국의 지방정부 현대화 기획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며 다음의 질문들을 던진다.
첫째, 우리의 지방정부들은 왜 하나같이 행정부(도지사·시장)-입법부(광역·지방의회)로 구성된 ‘대통령제 모델’을 따라야 하는가. 다른 대안들, 예컨대 선출직 단체장 대신 의회 다수파가 행정과 서비스를 전담할 보다 전문적인 ‘매니저’를 임명하는 내각제 모델이나 전문 행정관리자 모델을 일부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지방정부의 형태 자체가 주민의 선택 대상이 될 수는 없는가. 둘째, 왜 모든 지방선거는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치러져야 하는가. 전국동시선거가 지방선거를 사실상 전국 정당의 중간평가전으로 만들었다면, 이 구조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셋째, 현행 기초-광역의 기계적 위계 모델 또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행정단위가 아니라 생활권 공동체다. 수도권과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같은 생활권 단위의 광역 거버넌스를 상상해야 교통, 환경, 산업, 주거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넷째, 현행 정당법이 전제하는 중앙당 중심의 정당 구조는 지방정치의 발전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이 구조가 지역 기반 정치조직이나 새로운 지방정당의 등장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개혁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상당한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지난 30년간 굳어진 지방정치의 관성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지방선거가 전국 정치의 하위 이벤트로 남고 지방정부가 중앙정치에 구조적으로 종속된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누구를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지방정부를 만들 것인가를 공론의 중심에 올리는 일, 곧 제도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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