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동물농장'은 24년 전통의 국내 간판 동물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수많은 유사 동물 프로그램들이 생기고 사라졌지만, 다채로운 동물 소개와 솔루션 제시 등 동물 프로그램의 원조로서 1200회가 넘는 방송 시간 동안 당당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 선보여진 특집 '너희가 똥개를 아느냐-똥개 강림 프로젝트'는 이런 '동물농장' 제작진이 작심하고 만든 특집이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기획은 시골 할머니, 1인 가구 모델 정혁, 어린 아이가 있는 4인 가족, 그리고 e스포츠 구단 T1 등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던 이들에게 믹스견(똥개)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변화를 담았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개'를 영험한 존재로 보아, 민화를 통해 액운을 막아주고 기운을 주는 신묘한 수호자로 표현했다. 승리가 필요한 T1에 '기'를 불어 넣는 룽지가, 운을 틔우고자 하는 연예인 정혁에겐 큰 '운'을 가져다주는 대길이, 먼저 반려견을 떠나 보낸 가족에겐 기억을 이어주는 '이을 승'의 돌배, 노인들만 남은 시골 마을에 힘 '력' 푸바오가 나타난다는 콘셉트다.
10년 넘게 '동물농장'을 이끌어온 '동물농장의 대모' 이윤주 작가와 팀의 리더인 유혜승 PD는 이번 기획이 단순한 입양 장려를 넘어, 믹스견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힘에 주목했다고 입을 모았다.
유 PD와 이 작가는 이번 특집의 시작점이 '관점의 전환'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동물농장'은 유기견이나 믹스견을 임시 보호하고 입양하는 코너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를 시작으로 '동물농장' 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 프로그램과 콘텐츠 등에서 유기견과 믹스견 입양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들을 '약자'나 '불쌍한 존재'로 조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작가는 "이번에는 믹스견들이 사람에게 도움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다"며 "기존과 다르게 접근해 판을 새로 짜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유 PD 역시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인간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가 '강림'했을 때, 어떤 행복과 따뜻함을 주는지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덧붙였다.
출연진 구성은 이러한 기획 의도를 충실히 반영했다. 제작진은 조용한 시골 마을의 할머니들부터 혼자 사는 젊은 남성 모델 정혁, 아이들이 있는 한남동 4인 가족, 그리고 MZ세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T1까지 다양한 '환경'을 섭외했다. 이 작가는 "동물은 연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들어가는 공간을 다양하게 설정해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고자 했다"며 "특히 시골에서도 개를 사랑으로 키우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 PD는 "T1 사옥의 경우 펫 프렌들리 회사이자 공동 육아라는 독특한 문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밝혔다.
특히 '페이커' 이상혁이 소속된 T1의 출연은 방송 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5년 장수 프로그램인 '동물농장' 예고 영상이 공개된 후 이례적으로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이 작가는 "T1이 펫 프렌들리 사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1순위에 뒀는데 다행히 구단 측도 호의적이라 바로 섭외가 됐다"며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시나리오에 없던 드라마가 완성됐다. 우리끼리는 강아지 '룽지'의 기운이라고 믿는다. 대표님에게도 '룽지 덕분'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웃음을 보였다. 유 PD 또한 "페이커라는 핫한 인물의 출연도 있었지만, '동물농장'과 T1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젊은 층에게 크게 어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매칭 과정에서도 세심한 고민이 깃들었다. 제작진은 각 출연자에게 필요한 '한자 키워드'를 정해 그에 맞는 강아지를 매칭했다. 예를 들어 조용한 시골에는 '힘'을, 승리가 필요한 T1에는 '기운'을 주는 식이었다. 이 작가는 "보호소를 다니며 공격성이 없고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다"고 소개했고, 유 PD는 "똥개는 세상에 똑같이 생긴 강아지가 단 한 마리도 없다"며 "외모를 떠나 그 자체로 환영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부연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촬영 기간이었지만, 출연자들과 강아지들 사이에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다. 정혁은 반려묘를 키우는 집사로서 신중하게 강아지를 대했고, T1 선수들은 경기 일정 속에서도 강아지 '룽지'를 진심으로 돌봤다. 유 PD는 "진심인 사람들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면접을 봤다"며 "짧은 기간 안에 관계가 바뀔 수 있었던 건 출연자들이 그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경계하던 강아지들이 사람의 사랑을 받고 금세 충성스러운 친구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두 사람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반려동물 문화의 변화와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믹스견의 집사이자, 스스로를 '동물농장 아저씨'라고 소개할 만큼 프로그램에 애착이 큰 것으로 알려진 진행자 신동엽 역시 이번 기획 취지에 크게 공감하며 피드백을 나눴다고 한다.
'너희가 똥개를 아느냐'가 호평 속에 막을 내렸지만 '동물농장' 제작진의 고민은 계속된다. 이 작가는 "'동물농장' 초기와 비교하면 반려 문화가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며 "입마개 착용 등 예전에는 문제 되지 않던 것들이 지적받는 시대가 됐다. 동물권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제작진도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유 PD는 시청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점을 고민거리로 꼽았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세세한 디테일을 이해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하늘과 땅 차이인 시청자 층을 아우르며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물농장'의 주인공은 '동물'이라는 것, 이들의 '스토리'에 집중하겠다는 정체성은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 작가는 "연예인이 나온다고 무조건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이 가진 힘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동물과 사람의 관계, 감정선이 없으면 죽은 아이템과 같다"고 단언했다. 유 PD 역시 "유명 연예인의 출연이 프로그램에 득이 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라며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동물농장'의 큰 방향성"이라고 전했다. 이어 "번식장 이슈처럼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더라도 진실을 알리는 사명 또한 놓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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