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한국 노동운동의 초현실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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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한국 노동운동의 초현실적 장면

시장경제 체제에서 노동조합 역할은 지대하다. 약자의 권익에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가 빛난다. 최고경영자 권위에 도전하는 유일기구로서의 가치는 대체 불가다. 하루 8시간 근무, 연차·유급휴가, 사회보험 등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거의 모든 권리가 치열한 노조운동의 성과다. 노조는 합리적 임금 구조 정착, 균형감 있는 경영진 출현도 촉진한다. 1987년 이후 한국 기업의 조직·운영이 업그레이드된 것도 그래서다.

이런 긍정적 역할은 상식적으로 작동할 때 얘기다. 지대추구적 행태로 혁신을 발목 잡고 전체 노동자 이익에 역행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비대해진 한국 노동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는 K노동의 궤도 이탈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까지 노조 과욕을 질책했지만 성과급은 영업이익의 12%로 결정됐다. 주주 배당금이 11조원(2025년)인데 주주가 고용한 직원이 급여 외에 30조~40조원을 추가로 나눠 갖는 이상한 배분이다. 국가전략자산인 반도체산업을 볼모로 한 ‘막무가내 인질극’이 성공한 모양새다.

한국 노동운동사에, 어쩌면 세계 노동운동사에 기록될 전과다. 반도체 사업부 성과급은 6억~7억원으로 3년만 받아도 20억원이다. ‘설마 될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초현실적 장면이다. 적자 사업부도 수억원을 보장받아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도 훼손됐다.

출범한 지 갓 2년 된 허약한 독립 신생 노조의 기념비적 승리다. 동병상련의 직장인, 노조 내부 구성원도 혀를 찰 정도로 신뢰성과 도덕성이 낮은 노조였다. 조합원 수백만 명과 전투력 ‘만렙’의 양대 노총이 가세할 앞으로의 성과급 전쟁을 생각하면 벌써 아찔하다.

‘노동력 독점 공급자’라는 특별한 지위가 삼성노조 협상력의 원천이 됐다. 여기에 심하게 기울어진 노동법이 힘을 보탰다. 한국은 파업 시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외국의 파업 근로자는 사업장 밖으로 나가 피켓을 들지만 한국의 모든 파업은 사실상 직장 점거를 동반한다. 갖은 방식으로 업무를 방해하고 설비를 타격한다.

결정적으로 노란봉투법이 가세했다. 손해배상 위험 해소는 노조의 심리적·경제적 문턱을 크게 낮췄다. 경영진의 사업상 판단도 파업 대상이라고 우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천문학적 손실 우려와 불법 파업 논란에도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노조에 호의적이고 불법 폭력마저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이가 적잖다. 공동체 이익을 위해 행동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어서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30조원 손실’과 ‘회사를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한 삼성전자 노조는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기실 노조는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조합원 이익에 복무하는 조직이다. 비조합원을 실업으로 내몰면서까지 조합 이익 극대화에 매달린다. 노조 작동 방식도 ‘노동자 간 임금 약탈’ 성격이 다분하다. 대기업의 높은 연봉은 기본적으로 중소 협력사 노동자의 희생이 바탕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확대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조 힘으로 임금을 시장 수준보다 높게 유지하다 보니 실업 유발이 필연이다. “대량 실업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전통적 노조 방식이 실패했다는 증거”(미제스)라는 진단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보면 조합원도 과격 노조운동의 희생양이 된다. 노조발 비효율이 경제 둔화와 일자리 구축으로 이어져서다. 노조 가입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탈한국 비율이 급증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노조에 독점권 부여는 자유시장 질서에 배치된다. 상응하는 사회적 기여를 입증해야 정당화가 가능하다. 공동체 이익까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해롭지 않다’는 정도의 최소한의 입증은 필수다. 그런 점에서 한국 노조가 누리는 남다른 특권의 정당성을 계량해보고 회수를 고민할 시점이다.

봇물 터진 n% 성과급 요구는 낡은 K노동운동이 한국 경제의 주요 리스크임을 시사한다. 노조 선의에 기대는 대처의 허망함도 일깨운다. 문제와 폐해를 애써 외면해온 정치권 등 각계의 각성이 시급하다. 노조를 제어하지 못해 비참한 말로를 맞은 나라가 부지기수다. 노조발 성장 둔화와 실업은 서민층에 가장 가혹하다. 노조와 기업의 무기를 대등하게 맞춰주는 노동법 개정이 민생 개혁 1순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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