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글로벌 인공지능(AI)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생성형 AI 선도기업인 오픈AI가 한국 정부를 보안협의체에 포함시키며 공공시장을 정조준했고, 라이벌 앤스로픽은 서울지사 설립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중국판 오픈AI’ 미니맥스까지 미국 AI의 20분의 1 가격을 앞세워 한국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한경 보도다.
미국과 중국 AI기업들이 동시다발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과 스마트폰 도입 때부터 글로벌 기업의 ‘기술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 수용성이 높은 한국 소비자와 기업은 AI 활용도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첨단 제조 인프라와 금융·공공 분야 디지털화 수준이 높아 AI의 성능과 보안성을 시험하는 데 최적의 ‘리빙 랩’이란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AI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핵심 원천 기술과 독자적 생태계 없이 이들의 지배력만 높이면 토종 AI기업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클라우드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주도권을 글로벌 빅테크에 넘겨준 일이 AI 시장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 미·중 AI기업이 벌이는 경쟁을 우리 AI 생태계를 발전시킬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체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자본력과 데이터 규모에서 앞선 미국이나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인 제조업과 의료, 금융 등 특화 영역에서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국 언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소버린(주권) AI’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소버린 AI 사업이 주춤한 사이 일본은 30개 대표 기업의 AI 동맹을 구축했다. 방대한 제조업 데이터를 무기로 피지컬 AI에 승부를 걸겠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도 소버린 AI와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섰다. 정부는 소버린 AI 정책 컨트롤타워를 재정비하고 규제 혁신과 인프라 확충, 인재 양성 등 정책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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