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전쟁에서 사기(士氣)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최전선에 직접 나서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해, 12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일본 함대를 격침하고 대승을 거뒀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사기는 병력의 수를 넘어 전세를 뒤집는 힘이 된다.
오늘날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이 곧 국가의 경제력이고 안보인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는 K-테크를 이끌어가고 있는 46만여 명의 기업 연구자들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중국의 연구원 수가 각각 160만 명, 260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분명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이만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압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구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인구절벽 시대를 맞은 우리에겐 인재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산업통상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산업기술 인력 부족 인원은 3만9000여 명에 달하며 이 중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12개 주력 산업에서만 3만 명에 가까운 인력이 부족하다고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을 선도해야 할 인재 역시 부족한 가운데 국가 경쟁력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재들이 사기를 잃고 의대로 이탈하거나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일찍이 손자병법에서는 상과 격려로 아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 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도화선이 된 화웨이는 연구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는 자사 연구원들에게 최고의 명예와 보상을 안겨줬다. 여기에 이들을 영웅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지며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처럼 기술인들을 우대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성장 동력이 갖춰질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2022년부터 기업 연구자들의 사기 진작과 위상 강화를 위해 '기술개발인의 날'을 정해 기념 행사를 열고 이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기술개발인에게는 정부포상을 확대하고 연구개발(R&D) 성과를 조명해 자부심을 주는 한편, 국민에게는 기술의 가치를 일깨워주자는 취지였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면서 2026년부터는 '기업부설연구소 등의 연구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기업부설연구소법)' 시행과 함께 기술개발인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될 예정이다. 날짜는 우리 기업 연구소가 1만개를 돌파한 9월 7일로 정해졌다.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기술개발인을 존중하고, 연구 성과가 사회적 명예로 인정받는 문화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 연구자의 헌신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 성과가 국가의 자부심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마련된다.
결국 역사 속 국난을 극복한 힘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나왔다. 기술전쟁의 승패 역시 사람의 사기에 달려 있다. 연구자가 자긍심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대한민국은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도약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koita9000@koi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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