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 공시에 '이것' 꼭 있어야"…투자자 요구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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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특허 개수만으론 부족… 기업 공시에 IP전략 담겨야
지식재산처 "딥테크 IP 공동펀드 조성해 IP금융 20조 시대 열 것"

20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베서더에서 열린 '제7회 IP금융포럼'에서 목성호 지식재산처 차장이 축사하고 있다./지식재산처 제공

20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베서더에서 열린 '제7회 IP금융포럼'에서 목성호 지식재산처 차장이 축사하고 있다./지식재산처 제공

상장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공시를 할 때 특허 등 지식재산권(IP) 전략을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양자(퀀텀) 등 산업 전반을 재편할 첨단 신기술이 쏟아지면서 기업 투자자들에게 IP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20일 지식재산처와 금융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7회 지식재산(IP) 금융포럼’이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에서 열렸다. 5대 은행(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투자기관·보증기관 등 약 140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첨단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IP의 가치와 IP금융 확대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포럼에 모인 금융·IP 전문가들은 '특허 몇 건' 수준에 머무는 공시를 넘어 기업의 IP 전략과 활용 방식, 사업과의 연계성까지 구체적으로 반영된 공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허 숫자만으론 기업을 알 수 없다… 한국형 IP공시 도입 해야해"

이날 포럼에서 현행 공시제도는 투자 정보의 핵심으로 떠오른 IP의 중요성을 담기에 부족하다며 '한국형 IP공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한국형 IP공시 활성화 추진 전략’ 발표에서 “무형자산 투자가 유형자산보다 세 배 빠르게 늘고 있지만, 한국 기업공시는 여전히 특허 건수·취득일 정도만 기재하는 수준”이라며 “IP의 사업 기여도나 경쟁력과의 연결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다양한 연구를 인용해 "기업 시장가치 기여 요인 중 지식자본 비중이 50%를 웃도는 수준으로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허 품질이 기업 이익·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IP 정보 내용이 정량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내용의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자료 캡쳐

현재 공개되고 있는 IP 정보 내용이 정량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내용의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자료 캡쳐

국내 기업들의 IP 실태 조사도 제시했다. “IP 전략과 현황을 충분히 공개한다”고 답한 기업은 27.8%에 불과했다.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IP 정보를 항상 참고한다”고 답한 비율이 16%에 그쳤다. 애널리스트들이 IP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기업의 소극적 공개와 미흡한 공시 체계 탓에 IP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는 IP 전략을 공시에 적극 반영하는 추세다. 일본 금융청은 2019년 기업지배구조코드 개정에서 ‘지적자산 투자 및 공시’ 의무를 명시했다. 기업지배구조코드는 상장 기업이 지켜야 할 지배구조 원칙으로 일본 금융청에서 2015년부터 시행했다. 유럽 역시 경영보고서에서 무형자산과 기업가치 창출 스토리를 연계해 소개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반면 국내 사업보고서에는 지식재산권의 종류와 취득일 정도만 담긴다. IP와 기업가치 간 관계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실장은 “사업보고서 지침에 IP와 사업 포트폴리오 간의 연계성을 명확히 반영하고,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기업들이 IP 공시 확대가 내부 전략 노출로 이어져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민감한 세부 정보는 보호하면서도 투자자에게 필요한 핵심 정보는 제공될 수 있도록 공시 체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초기 IT기업 정보 격차 여전… IP가치평가도 바뀌어야

IP가치평가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승협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IP투자 활성화 방안’ 발표에서 “기술기업의 성장을 더 확실하게 뒷받침하려면 제도권이 IP 관련 정보를 보다 폭넓게 공개할 필요가 있으며 평가 방식과 정보 제공 체계도 함께 손질돼야 한다”고 말했다.

IP가치평가는 IP담보대출이나 IP직접투자 판단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처가 마련한 제도다. 국내 한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기업도 IP투자연계 평가보고서를 활용해 14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식재산처에서 시행하는 IP가치평가 사업에 대한 내용./이승협 중앙대 교수 발표 자료

지식재산처에서 시행하는 IP가치평가 사업에 대한 내용./이승협 중앙대 교수 발표 자료

이 교수는 IP가치평가 제도가 초기 기업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가 커질 수록 정보 비대칭이 생기는 만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술 단위를 넘어 IP 포트폴리오 단위로 평가 범위를 확대대하고, IP 거래가격과 로열티, 법적 분쟁 정보 등을 통합한 국가 차원의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IP가치평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의 일환으로 IP금융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IP금융은 IP 담보대출과 IP보증, IP 직접투자로 크게 나뉜다. 국내에서는 2013년 산업은행이 첫 IP 담보대출을 도입했다. IP금융 규모는 지난해 10조 원을 돌파했다.

지식재산처 관계자는 “2028년까지 매년 1000억 원 규모의 딥테크 IP 공동펀드를 조성해 기술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며 “IP금융 20조 원 시대를 곧 열겠다”고 밝혔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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