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서울에 온다. 6월 4일, 프랑스 국립퐁피두센터의 서울 분관인 퐁피두센터 한화가 큐비즘(입체주의)의 거장인 피카소를 필두로 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이라는 전시를 개최하며 문을 열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내게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젊은 날 헤어진 옛 연인의 기억처럼 내 청춘의 한 시절을 소환했다.
1990년대 파리 유학생이던 나는 퐁피두센터를 자주 찾았다. 그곳엔 밤늦게까지 열려있는 도서관도 있었고, 동시대와 근현대 중요 예술가 작품을 언제든 볼 수 있는 미술관도 있었다. 미래가 막막한 이방인의 외로움과 불안을 잊기 위해 퐁피두광장에서 사람 구경하며 그 건물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안과 밖이 뒤집힌 듯 철골과 배관을 훤히 드러낸 그 건물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었다. 외벽에 붙은 투명한 튜브 통로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내장이 연동 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내게 “자포네즈(일본인)?”라고 물을 때마다 느끼는 정체성의 씁쓸함도, 언어의 장벽도 그 기괴하고 활기찬 건물 안에서는 문화와 예술이란 소화효소로 다 함께 섞여 어우러지는 듯했다.
가난한 이방인일지라도, 퐁피두센터 미술관 관람은 ‘파리에 있음’으로 누리는 향유이자 특혜였다. 초현실주의와 큐비즘, 현대미술과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나는 새로운 예술 감각에 눈을 떴다.
이후로도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신선한 예술 에너지와 피를 수혈받았다고 해야 할까. 특히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은 내게 인생과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과 서술 방식에 적잖은 영감을 줬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서술을 위해 피카소의 큐비즘 관점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메타픽션 요소를 아우른 작품으로 귀국 후 문학상을 받았다.
서울에 퐁피두가 온다는 것은 그 건물이 들어오는 일이 아니다. 내게 그것은 내 젊은 날에 깃들어 있던 예술의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영혼과 재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휴대폰에 퐁피두 소장품이나 피카소 작품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실물 원화를 본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일이 아니라, 잠시 숨을 멈추고 전설이 된 화가의 시간과 숨결을 오롯이 느껴보는 일이다.
나 역시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미술관에서 여러 화가의 실물 작품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가장 소름 돋은 순간은 늘 살아 있는 붓질의 떨림을 직접 마주할 때였다. 고흐의 ‘자화상’ 앞에 섰을 때도 그랬고, 스페인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에서의 학살’을 봤을 때도 그랬다. 이미지로 수없이 본 그림이 실물 앞에서는 전율로 다가오는 체험을 하곤 했다.
이제 프랑스에 가지 않아도 퐁피두가 품은 예술가들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실물 원화를 서울에서 만나게 된다. 이번 전시를 두고 로랑 르봉 퐁피두센터 관장은 “큐비즘은 단순한 예술 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운동이며, 20세기 시각 혁명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첫 전시로 택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깊게 동의한다. 30년 전 젊은 무명 소설가이던 내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만난 큐비스트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 세월이 흘러 청춘은 가버렸지만 불후의 명작 앞에서 또 어떤 떨림을 느끼게 될까. 그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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