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꼭 목소리가 커야만 뜻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두를 이해하게 만든 장면도 있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은 채, 때로는 침묵에 가까울 만큼 조용했다. 말 한마디 없이도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작곡가 하이든이 쓴 교향곡 45번이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772년에 작곡된 이 작품은 ‘고별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가문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여름이면 궁정 악단 전체가 별궁으로 함께 이동해야 했다. 문제는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체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는 점이었다. 음악가들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몇 달씩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일상과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와 그리움도 함께 깊어져 갔다. 무대 위에서는 늘 완벽한 연주를 들려줘야 했지만, 무대 밖에서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이어질수록 단원들의 얼굴에도 피로가 쌓였고, 곳곳에서 힘들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접 나서서 불만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궁정 악단은 귀족의 후원을 받는 대신 그에 철저히 종속된 위치에 있었다. 고용주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자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참고 넘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하이든은 이들을 대신해 방법을 떠올렸다. 말을 꺼내는 대신, 음악으로 상황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직접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말보다 분명하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음악 속에서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났기에 듣는 사람 역시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시위, 교향곡 45번 ‘고별’이 탄생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그 핵심이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촛불을 끄고 조용히 무대를 떠난다. 음악은 계속 흐르지만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사람이 떠날수록 무대는 서서히 비어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득 차 있던 무대가 어느새 텅 비어가는 모습은 그 어떤 설명보다도 더 강한 메시지가 됐다. 결국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연주자 두 명만 남아 조용히 곡을 마무리한다. 넓었던 무대가 하나둘 비어가고 소리마저 점점 가늘어지는 순간, 누구라도 그 의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장면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이제 집에 가고 싶습니다.” 아무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 설명이 없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위였는지도 모른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방식에 있다. 누군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감정을 앞세워 맞서지도 않았다. 그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게 전달됐다. 실제로 이 연주 이후 음악가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필요한 충돌도, 감정적인 대립도 남기지 않았다.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연주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시작되고, 음악도 평온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는 순간부터 모두가 깨닫게 된다. 이 음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에스테르하지 후작 역시 그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다들 갔으니, 우리도 가야겠군.” 그날의 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해야 할 말은 이미 모두 끝나 있었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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