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순사에서 전경예우까지…경찰대 반세기의 역설

1 week ago 12

박정희 말기 경찰대 구상, 1981년 개교 후 정권 보위대 오명 경찰 선진화 노력은 게걸음, '경찰 하나회' 카르텔 폐해 심각 검수완박으로 경찰 몸값 급등, "국민 피해 선제 차단을" 이미지 확대 경찰대 1기 졸업 축하하는 전두환·이순자 부부 (서울=연합뉴스) 1985년 제1기 경찰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공 >>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85년 4월 9일, 경기도 용인 교정에서 열린 경찰대학 제1기 졸업식. 단상에 선 대통령 전두환은 졸업생 대표의 경례를 받고 축사를 읽어 내려갔다.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오직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국민에 대한 봉사 정신으로 무장하여, 정의롭고 청렴결백한 경찰관의 표상이 되어 주기를…." 5공 정권의 정통성 논란과 별개로, 전두환의 말에는 새로 탄생한 엘리트 정예 경찰을 향한 당시 국민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경찰판 사관학교 구상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7년에 구체화됐다. 일제 조선인 순사에서 출발한 한국 경찰은 해방 후 간부후보생 제도(경위채용)로 간부를 충원했는데, 열악한 근무 여건과 낮은 처우 탓에 자질과 전문성 부족이 고질적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대설치법을 만들고 박정희 서거 두 달 뒤인 1979년 12월 말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했다. 1981년 3월 9일 인천 부평의 경찰종합학교 임시 교사에서 제1기 신입생 입학식이 열렸다. 학비 전액 면제와 졸업 후 경위 임용, 병역 대체라는 파격적인 혜택에 힘입어 입시 경쟁률은 무려 220대 1을 기록했다. 학력고사 상위 0.5% 이내의 수험생들이 몰려들면서 합격선은 서울대 상위권 수준에 형성됐고, 지금도 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확대 민주화 시위 진압에 투입된 전투경찰대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를 전후한 최루탄 피해자가 전국적으로 5천명이 넘었다. 임산부가 유산을 하고 파편이 뇌에 박혀 혼수상태에 빠진 대학생(연세대 이한열) 등 피해자의 양상이 다양했다.1987.6.10(서울=연합뉴스) 국민은 '경찰대는 순사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희망 고문에 그쳤다. 학생들은 임관과 동시에 독재정권의 보위 수단인 전투경찰의 최전선 지휘관으로 투입돼 민주화 시위 진압을 진두지휘했다. 경찰 전체의 질적 향상도 기대만큼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를 뽑아도 조직 문화와 생리가 바뀌지 않...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