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는 한국 노동시장의 핵심 화두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산업 전반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노동시장의 작동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과거와 같은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과 고용 창출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여전히 높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고용·해고 관행 유연성은 조사 대상국 중 하위권(2019년 기준 141개국 중 97위)에 머물러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한 번 채용하면 경기 변동이나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인력 조정이 극도로 어렵다는 점은 신규 채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채용 절벽’으로 불리는 청년 고용 위기의 이면에는 이런 고용 경직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정규직 중심의 경직된 보호 구조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심화하고 미래 세대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등 노동시장 전반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AI 시대에 노동의 유연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AI는 직무 성격 자체를 빠르게 변화시킨다. 특정 기술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직무 재배치가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과거 공장제 시대의 경직된 근로 형태와 보상 체계를 고집하는 것은 노사 모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기업은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재량권을 확보해야 하고 근로자는 특정 직장에 안주하기보다 자신의 숙련도를 높여 노동시장에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직된 제도하에서는 이 같은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 노사관계 역시 과거의 대립적 구조를 넘어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협력적 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직무 중심 인사체계, 성과 기반 보상, 근로시간 유연화 등도 주된 목표 과제다.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해고 보호 완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을 도입하고, 실업급여 체계 개편으로 단기 일자리와 직업훈련을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실업률을 크게 낮추고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의 인력 운용 유연성을 높이면서도 직업훈련과 재취업 지원을 강화해 안정성을 보완한 점이 특징이다.
독일의 사례는 AI 시대에 우리 노사에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한다. 유연성과 안정성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제도 설계를 통해 충분히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고 규제는 완화하되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안을 사회안전망과 관련 정책으로 보완하면 된다. 기업에는 인력 운용의 자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근로자에게는 실질적인 보호와 재도약 기회를 보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규제 개혁과 안전망 확충을 병행하는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고, 노사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유연성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로 작용하고 안정성은 근로자가 변화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이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우리 경제는 비로소 선순환 궤도에 오를 수 있다.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유연안정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하고 한국형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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