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도 안 된 꼬마 마이클은 창문 너머로 눈사람을 만드는 또래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지만, 차마 나가 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명령하에 가족 밴드 연습에 몰두한다. 폭압적인 아버지는 자녀 중 가장 재능있는 마이클을 학교 대신 클럽 공연장으로 보내고, 연습을 거부하면 허리띠를 풀어 폭행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욕심에 어린 시절을 빼앗긴 마이클은 성인이 돼서도 피터팬의 네버랜드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최근 개봉한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의 한 장면이다.
K팝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산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재능이 넘쳐나는 아동·청소년 출연자가 등장한다. 초등학생 출연자가 넉살 좋게 트로트를 부르고, 10대 아이돌그룹은 대중음악산업을 선도한다.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용역 제공에 여러 규제를 두고 있다. 헌법은 연소자의 근로를 특별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15세 미만인 자의 사용을 금지한다.
대중문화예술과 직접 관련 있는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은 국외 활동을 위한 이동이나 장거리 이동 시에도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학습권, 휴식권, 수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15세 미만 청소년의 대중문화예술 용역 제공 시간은 주 35시간이다. 또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원칙적으로 청소년의 대중문화예술 용역 제공이 금지돼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 개회 시점에 모습을 보인 아역 배우와 아이돌 가수 중 일부가 폐회 때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 규정은 선언문에 불과할 뿐, 위반 시 제재 규정이 없다. 이에 10대 아이돌그룹이 지나친 체중 감량과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제 막 데뷔의 꿈을 이룬 어린 대중문화예술인이 부모나 다른 보호자의 도움 없이 거대 기획사와 제작사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10대 초반 소년들이 주연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나 초등학생 20여 명이 음악경연대회에 나가는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이 국내 공연을 할 때 어린 출연진을 위해 ‘샤프롱’이라는 전담 보호자를 둔다. 본래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나갈 때 보살펴 주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직책이다. 공연장에서 어린 배우의 연습과 휴식은 물론이고 이들의 학습과 정서 관리까지 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는 공연장과 촬영장에 전담 책임자를 두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관리할 것을 권고했다.
2019년 개봉된 영화 ‘우리집’의 촬영 현장에 배포된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하는 성인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은 성인 중심 촬영 현장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윤가은 감독이 작성한 이 촬영 수칙은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 배우로서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 바라보고 이들의 건강·안전·자존감을 어른들이 지켜줘야 한다고 당부한다.
단순히 누군가의 아역에 그치지 않고 당당히 대중문화예술산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더 이상 선량한 제작자들의 윤리의식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네버랜드에 갇히지 않도록, 그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산업의 건강한 주역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어른의 사회적 관심과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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