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1 week ago 10

[시론]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인 8000을 넘어서는 등 증시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커지고 부동산 쏠림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일부 대기업의 주가 상승을 넘어 생산적 금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주식시장 유동성이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시장에 마찰이 없다면 자금은 가장 생산적인 곳에 배분될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고, 생산성이 낮은 투자 기회는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그러나 현실의 신용시장은 단순하지 않다. 담보가 충분한 차주는 쉽게 자금을 조달하지만, 생산성은 높아도 담보가 부족한 기업은 자금 접근에 제약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주택 가격 상승은 은행의 대출 배분을 바꿨다. 집값이 오르면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완화하는 반면 기업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 기준은 강화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은 증가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둔화됐고, 설비투자 역시 위축됐다. 부동산 호황이 모든 투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건설은 늘리고 설비 및 지식재산은 줄이는 방향으로 구성을 바꾼 것이다.

이는 기업의 자금 수요 감소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기업의 신용위험 우려가 완화되는 상황에서도 은행은 가계대출에 호의적이었지만 기업대출에는 보수적으로 대응했다. 부동산 호황은 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생산적 대출을 밀어내고,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대출을 끌어올리는 힘으로 작동했다.

그렇다고 이를 은행의 탐욕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업의 막대한 부채로 인해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 규제당국과 은행이 안정성을 중시해 온 것은 자연스럽다. 주택담보대출은 담보가 명확하고 회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은행의 자원 배분 행태 역시 합리적이다. 문제는 각 경제 주체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사회 전체로는 비효율적 자본 배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에는 안전한 대출이고 차주에게는 자산 증식의 기회일 수 있지만, 경제 전체로는 생산성 높은 기업의 투자 기회를 구축(crowd out)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적 금융으로의 진정한 전환은 유인체계의 근본적 재설계를 필요로 한다. 첫째, 부동산 호황기에는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나 자본 부담을 높여 은행이 부동산담보대출을 과도하게 선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은행권 규제로 비은행권이 반사 이익을 누리지 않도록 금융권 전반의 규제 정합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둘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가계 레버리지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억제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가계의 대출 수요를 조절하는 장치이지, 은행의 자산 배분 유인을 바꾸는 수단은 아니다. 따라서 줄어든 대출 여력이 중소기업이나 혁신기업으로 자동 배분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성장성과 생산성이 높지만 담보가 부족한 기업에 대한 신용보강과 정책금융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무형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담보 중심 금융구조에서 과소평가되기 쉽다. 다만 정책금융은 규모보다 선별 능력이 중요하다. 저생산성 기업을 반복 지원하거나 민간 금융으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한 기업을 보조해서는 안 된다.

생산적 금융은 부동산대출을 단순히 억제하거나 기업대출을 무조건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니다. 안정과 성장 사이의 해법은 위험을 회피하는 금융이 아니라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는 금융에 있다. 부동산으로 쏠린 신용의 물길을 생산적 투자로 돌리는 일은 유인체계 재설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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