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풍력발전 기업인 덴마크 베스타스의 헨리크 안데르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졌다. 그는 “100기가와트(GW)라는 원대한 목표도 결국 첫 1GW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발전용량 수치에 매몰되기보다 점진적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계통 안정화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충고다.
이런 우려는 이미 유럽에서 현실화됐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부터 북유럽 최북단 라플란드까지 수억 장의 패널이 깔리며 태양광은 여름철 최대 전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올해 유럽에서 버려질 전력량은 40테라와트시(TWh)에 달할 전망이다. 영국 런던 광역권이 1년 동안 쓰고도 남을 양이다. 발전 설비는 급증했으나 이를 수용할 송배전망이 턱없이 부족해 한낮에 패널을 강제로 꺼야 하는 ‘출력 제어’가 일상이 됐다.
시장 가격 신호는 더 극적이다. 올 1분기 유럽연합(EU) 도매시장에서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시간은 1223시간으로, 1년 전의 두 배를 웃돌았다. 지난 4월 메가와트시(㎿h)당 가격이 -500유로에 육박했다. 발전량이 늘수록 단가가 폭락해 수익성을 갉아먹는 이른바 ‘자기잠식’ 현상이 본격화한 것이다. 발전사업자가 시장에서 비용을 회수하는 가격 비율인 캡처팩터 역시 0.54에서 0.40으로, 25%나 추락했다.
이는 일시적 공급 과잉이 아니라 구조적 설계의 실패다. 에너지 전환의 병목 구간이 송배전·저장·수요 측면으로 이동한 것이다. 유럽 그리드 운영사의 절반이 신규 재생에너지를 연계할 계통 용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인허가와 부지 확보의 벽에 가로막혀 전선과 변전소, 배터리 등의 확충이 설비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호남권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가 상시화됐고, 제주도는 봄·가을 주말이면 태양광 발전기의 절반 가까이가 멈춰선다. 유럽이 겪은 시행착오를 답습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국내 정책 담론은 여전히 “몇 GW를 더 깔 것인가”라는 양적 확대에 매몰돼 있다. 송전망 건설에는 평균 10년 이상이 소요되고, ESS 설치는 걸음마 단계다. 실시간 입찰제와 요금제 개편 등 시장 제도 개선도 규제의 덫에 갇혀 있다.
세 가지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발전과 계통, 수요의 ‘삼위일체’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송전망 보강 일정과 재생에너지 보급 스케줄을 정교하게 동기화하지 않으면 한반도 전역에서 유럽식 좌초가 재연될 수 있다.
둘째,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가격 신호의 시·공간적 분화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는 계통 운영의 필수조건이다. 공급 초과 시간대 마이너스 가격은 비효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저장장치와 수요반응(DR) 투자를 유도하는 가장 정확한 신호다. 시간별 가격 차별화로 차익거래를 활성화하고, 지역별로도 조류 분석에 기반해 서로 다른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셋째, 보조금 체계의 고도화다. 발전량에 비례해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단순 보조는 자기잠식을 가속화할 뿐이다. 저장장치 결합을 의무화하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제도를 개편하는 등 시장 친화적 접근법이 요구된다.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의 이행은 단순히 패널 수를 늘리는 게임이 아니다. 그 패널이 생산한 전력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필요한 곳으로 흐르도록 ‘전력 고속도로’를 닦는 일이다. 햇빛은 공짜다. 그러나 그 햇빛을 사회적 가치로 치환하는 시스템은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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