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 '연기'…팩트시트 영향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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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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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에 대한 정부 결정이 구글과 마찬가지로 내년으로 유보됐다. 애플이 지난 6월 제출한 지도 반출 신청 내용을 보강하겠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설치 여부와 팩트시트 영향이 쟁점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이날로 예정됐던 고정밀 지도 반출 안건 처리 기한을 연장했다. 정부는 지난 5일 애플이 신청서 보완에 필요한 기간을 요구하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앞서 애플은 올해 6월16일 정부에 축척 1대 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신청했다. 정부는 9월4일 추가 국가 안보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결정을 이날까지 유보했다. 애플은 앞서 2023년에도 동일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요구했다 불허 판정 받은 바 있다.

정부는 안보 차원에서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건으로 보안시설 노출 대응을 위한 국내 서버 마련, 보안시설 가림막 처리, 좌표 정보 삭제 등을 제시해왔다. 구글의 경우 영상 보안처리와 좌표 제한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신청서에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 반출 결정이 두 차례 유보됐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기술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애플은 구글과 달리 데이터센터 설치를 포함해 정부 요청 사항을 대부분 수용하겠단 입장이다. 애플은 지난 6월 정부에 제출한 1대5000 고정밀 지도 반출 신청서에서 “한국 지도 정보가 저장되는 장소를 한국, 미국, 싱가포르에 소재한 애플의 개발 데이터센터로 제한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애플이 언급한 한국 소재 데이터센터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플은 글로벌 정책에 따라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한국에 데이터센터가 있다고 하는데 아무도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언급한 싱가포르 데이터센터는 완공도 안 됐다"며 "국내 데이터센터 존재 여부는 정부가 검증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미 관세협상도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문제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비관세 장벽 완화 요구로 미국 빅테크 기업에 유리하게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국면이 재편될 수 있다는 것.

한미 양국은 지난달 14일 관세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한국이 디지털 서비스 관련 규제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서비스 이행에 필요한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히 한다는 원칙적 내용에 합의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무역대표부(USTR)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정밀 지도 국외 반출 심사를 '디지털 장벽'이라 꼬집었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 미국정보기술(IT)업계 이익단체도 잇달아 성명을 내 한국 정부에 국외 반출 허용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 한국과 미국은 연내 자유무역협정(FTA) 상의 장관급 공동위원회를 열고 비관세 장벽 분야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구체적으로 고정밀 지도 반출 요구 등 특정한 요구 항목을 갖고 상당히 오랜 기간 협상을 했고,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자체도 꽤 많은 기간의 협상이 있었다"면서도 "그런 내용보다 '동등한 대우'(equal treatment) 정도의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개별 사안은) 계속 협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동등한 대우' 조건이야말로 빅테크 기업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없이 애플, 구글 등에게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준다면 특혜"라며 "동등한 대우 의미는 절차 생략 없이 데이터를 바로 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무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도 "법인세, 데이터센터 모두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며 "형평성 문제로 보면 국내 기업인 네이버나 카카오와 똑같이 미국 빅테크에도 관련 내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애플이 말하는 국내 소재 데이터센터가 정부에서 요구하는 규모와 조건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단순 데이터 서버 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국내 기업과 똑같은 조건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동등한 대우'를 동일한 데이터센터 구축으로 좁게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 "언어의 평등성을 맞춘다고 보면 일견 맞을 수 있으나 통상 협상에서 말하는 동종성은 각자 원하는 조건을 동등하게 주고받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팩트시트가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압박은 점점 거세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는 국익에 맞춰 원하는 것을 충분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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