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광영]내란을 거부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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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신광영 논설위원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겐 중요한 선택을 고민할 109분의 시간이 있었다. 소방청장에게 언론사 단전·단수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할지 말지가 그에게 던져진 숙제였다. 심사숙고 끝에 그런 지시를 해선 안 되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소방청장에게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그날 오후 9시 48분경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109분 뒤인 오후 11시 37분 소방에 전달했다.

이상민의 109분, 한덕수의 91분

그는 일개 연락관이 아닌 장관이었다. 그것도 계엄 선포나 해제를 건의할 수 있는 주무 장관이었다. 15년 법관 경력에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그였다. 요건에 맞지 않는 불법 계엄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였다. 윤 전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지시를 따를지 말지 스스로 판단할 권한과 시간이 그의 손에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내란 세력과 한배를 타기로 선택한 것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도 계엄에 맞설 91분의 시간이 있었다. 한 전 총리는 그날 밤 윤 전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 계획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고 했다. 그 정도로 황당했다면 어떻게든 말렸을 법도 한데 그가 선택한 대응책은 국무회의를 열자는 것이었다. 국무위원들을 불러 반대 의견을 모아 보려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한 전 총리가 계엄에 명확히 반대했다고 증언한 국무위원은 한 명도 없다. “50년 공직 인생을 이렇게 끝내려 하느냐”는 최상목 전 부총리의 비난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계엄 계획을 알게 된 후 실제 선포되기까지 91분간 그런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더구나 자신의 건의로 열린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일방적 계엄 통보로 끝났음에도 참석자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오히려 거들었다. 한 전 총리의 1, 2심 재판부 모두 당시 국무회의가 계엄에 합법적 외피를 씌우려는 행위에 불과했다고 판결한 이유다.

박 전 장관 역시 내란을 거부할 시간이 있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는 계엄이 선포되자 바로 법무부로 이동하며 차 안에서 간부들에게 전화 지시를 했다. 윤 전 대통령 호출을 받고 용산에 들어간 지 2시간이 훌쩍 지난 때였다. 계엄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법률가인 그가 불법 계엄임을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간부들에게 출국금지팀을 비상대기시키고, 구치소 수용 여력을 파악하도록 했다. 계엄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계엄령 위반으로 많은 정치인과 시민들이 잡혀 올 것에 대비한 후속 조치였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가)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지시를 내리던 시각은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국회로 모이고 국민들도 거리로 나오던 때였다. ‘엎질러진’ 상황이 되지 않도록 막으려는 필사적 노력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계엄이 온전히 실현되도록 뒷받침하는 행태를 보였다. 다음 달 9일 선고되는 그의 1심 판결에서 이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엎질러진 물? 맞설 생각은 있었나 이들 세 국무위원이 당시 반대했더라도 계엄 선포는 막지 못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반(反)국가적 결정에 국무위원으로서 어떻게 대응할지는 그들 스스로 판단할 권한과 시간이 있었다. 박 전 장관은 최근 결심공판에서 6년 차 검사가 작심 발언과 함께 징역 20년을 구형하자 “내 인생을 깡그리 부정하는 후배 검사의 말에 참담함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공직 인생을 깡그리 부정한 건 그날 밤 절체절명의 순간에 국민이 아닌 권력의 편에 서기로 선택한 그들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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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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