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노인 자살 1위 나라에서 ‘존엄한 죽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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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정부가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연명의료법은 임종이 임박한 ‘임종기’와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말기’를 구분하고 있지만 임상적으로는 그 경계가 지극히 모호하다. 상식적으로 사망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의사는 임종기를 엄격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10명 중 2명만 연명 중단의 뜻을 이루는 이유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해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손질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죽음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던 우리 사회가 죽음을 하나의 선택지로 수용하는 그 속도가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연명의료 중단 시기: 임종기→말기

연명의료 중단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환자가 직접 또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실행하면 존엄사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만큼 연명의료 중단의 범위가 확대된 다음은 필연적으로 존엄사가 논의될 것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성인 10명 중 8명이 의사 조력을 받는 적극적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

보통 회복이 불가능한 질병과 오랜 시간 싸울 때, 통증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질병이 고통만을 연장할 때 죽음을 선택할 정당성이 생긴다. 난치성 질환자나 말기 환자 상당수는 보통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상태가 악화하면 병원 응급실로 간다. 응급실에서 요양병원으로 돌아오거나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생애 말기 병원을 전전하는 ‘뺑뺑이’를 반복하다 보면 질병 못지않은 고통을 겪게 된다. 병원은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확대한다고 병원에서 맞는 죽음의 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만약 호스피스 병상이 충분해 통증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인공호흡기로 강제호흡을 당하지 않는다면, 영양관을 주렁주렁 매달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다른 대안이 없어 선택한 존엄사가 온전히 자기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 집에서 죽는 것도 쉽지 않다. 해당 조사에서 좋은 죽음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통증 없는 죽음’이 1위로 꼽혔다. 이어 ‘가족이 병수발을 오래 하지 않는 것’, ‘가족의 간병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것’ 순이었다. 배우자나 자식이 간병으로 지쳐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면, 간병비 부담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면…. 자율성을 잃고 가족에게 짐이 된 환자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을까. 죽음의 질은 삶의 질에 달려 있다. 죽음의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주는 의료, 가족을 저당 잡는 돌봄 등 제도의 실패를 그대로 두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만 강조하는 지금의 논의가 불편하고 껄끄럽다.

존엄한 죽음의 뒷면, 존엄하지 않은 삶

더욱이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 1위인 나라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이다. 60대부터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살률이 올라가는데 80대는 인구 10만 명당 59.4명, 80대 남자로 좁혀 보면 115.8명까지 치솟는다. 오래 살수록 자살률이 치솟는 건 빈곤, 질병, 고립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비극이다. 이를 방치한 채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은 ‘존엄사’라는 용어로 죽을 권리만 강조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연명의료 중단 확대도, 존엄사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돌봄과 고통 없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의료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가 존엄한 삶을 보장할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채 존엄한 죽음부터 얘기한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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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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