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늦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벗드갈 한국 블로그]

2 days ago 3

일러스트레이션 정소현 kar0306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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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알고 지낸 지 올해로 14년 된 대학 시절 친구 네 명이 있다. 유학생으로서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아이 엄마였다. 우리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삶에 중요한 순간마다 만나 서로를 축하해 줬다. 돌아보면 20대 초반 시절 맺은 인연 중 지금까지 이어진 몇 안 되는 우정이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지난주 우리 넷 중 세 번째로 짝을 찾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남은 한 명에게 시선이 향했다. “너는 언제 시집가냐”라는 말이 가볍게 오갔다. 그는 나와 동갑이고 내 삶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이기도 하다. 최근 소개팅을 했다는 친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인생에 별다른 스토리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자조하듯 말했다. 이어 자신이 어딘가 뒤처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스토리가 없는 삶’이란 존재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많고 적음이 삶의 밀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차이는 언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지금 돌아보면 충분히 준비된 선택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기준도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고 판단도 깊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을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과 삶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다. 21세의 나는 방향성이 흐릿했다면, 34세의 나는 좀 더 분명해졌다. 그 차이는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니라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늦었다’고 느끼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집, 자산과 같은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갖춰지지 않으면 시작조차 쉽지 않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타인과의 비교에 노출되기 쉽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면 선택을 미루게 된다. 올해 3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여자 31.6세, 남자 33.9세다.

몽골은 아직까지는 한국과 다른 결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사회질서가 남아 있다. 과거에는 한 가정에서 네 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것이 흔했고, 지금도 줄긴 했지만 두세 명을 두고 있다. 평균 기대수명이 약 62∼67세 수준인 몽골에서는 삶의 시간에 대한 감각 역시 한국과는 다르다. 물론 변화는 시작됐다. 자녀 수가 줄어드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결국 몽골 역시 한국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회가 자본을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결혼과 출산은 점점 더 ‘조건’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나만 늦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개인 선택의 결과일까, 아니면 사회 구조의 결과일까. 한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렸던 부탄은 인터넷이 보급된 후 외부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불행을 인식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 역시 발전과 동시에 불안을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사는 사회일수록 비교는 더 치열해지고, 비교가 많아질수록 결핍의 감각은 선명해진다. 결국 풍요는 안정을 보장하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이어진다. 욕심과 탐욕이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탐욕과 불안이 사회 전체의 흐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삶의 특정 단계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더 이상 개인만의 일도, 또 사회 구조만의 일도 아니게 됐다. 그래서 단순히 선택지를 좁히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기준과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무엇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무엇이 삶을 흔들리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무너지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시계와 조건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늦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늦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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