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사업보국' 삼성, 어쩌다 국가적 우환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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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칼럼] '사업보국' 삼성, 어쩌다 국가적 우환이 되었나

삼성전자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노사 양측이 다시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조직 균열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무리 회사가 미워도 “이 회사는 그냥 없어지는 게 맞다” “중국 회사로 이직해 기술을 유출하겠다”는 말은 함부로 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코스피 시원하게 빼보자”는 발언 등으로 노조는 ‘국민 밉상’ ‘공공의 적’이 됐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직원 사이에서도 “삼성 출신 중고 신입(경력직)은 가려 뽑아야지, 안 그러면 우리도 망하겠다”는 우스갯말이 돈다고 한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가 위대했던 기업의 실패 요인을 분석한 책에서 제1 요인으로 꼽은 게 ‘자만’이다. 콜린스는 조직이 자만에 빠지는 핵심 이유로 ‘성공 원인에 대한 착각’을 들었다. 이 분석은 이번 삼성 사태에도 꼭 들어맞는다. 삼성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에는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 전망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지난 1분기(57조2000억원)만으로 이미 작년 전체(43조6000억원)를 넘어섰고, 연간으로는 최대 360조원으로 글로벌 D램 정상 자리를 탈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1위에 다시 오른다고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진정한 의미의 1등이 맞나 싶다. 삼성 실적의 최대 요인은 PC용 반도체와 같은 ‘컨벤셔널 메모리’ 가격의 급등이다. 시장 트렌드가 AI용 HBM칩 계열로 옮겨가면서 컨벤셔널 메모리 공급이 크게 달리자 컨벤셔널 메모리 가격이 HBM을 웃도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HBM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컨벤셔널 메모리 라인을 철수한 것도 쇼티지 현상을 가중시킨 요인이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삼성으로선 시쳇말로 ‘노가 난’ 상황이다.

삼성은 안타깝게도 현재 반도체 시장 판도를 선도하는 기업이 아니다. HBM3는 SK하이닉스가 여전히 50% 이상 점유율로 1위이고, 삼성은 최근 점유율을 다소 끌어올렸다고 해도 30% 선이다. 파운드리는 시장 구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TSMC는 70%, 삼성은 7% 선이다. 이 점유율로 수익을 낼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결국 삼성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힘입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 성과급을 운운한다면 그게 바로 ‘성공 요인에 대한 큰 착각’이다.

삼성 경영진 역시 ‘자만의 덫’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AI 메모리칩의 출발점인 HBM2를 최초로 개발한 곳은 SK하이닉스가 아니라 2016년 삼성전자였다. 그러나 삼성은 AI산업 생태계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 2019년 HBM팀을 해체했고, 이후 주도권을 하이닉스에 내내 내줬다. 컨벤셔널 D램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굳이 라인을 희생하는 기회비용까지 치를 필요가 뭐 있냐는 현실 안주, 자만의 폐해였다. PC 시장의 절대강자로 애플의 모바일칩 제안을 거절한 인텔이나 재무적 성과에만 집착해 직원들이 가족을 태우는 것조차 기피할 정도로 품질 문제가 불거진 보잉 모두 시장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1등의 확증편향 리스크 사례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삼성 정신의 요체는 위기의식과 치열함이다.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반도체 기흥캠퍼스를 6개월 만에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파산에 대한 공포’였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 이건희 회장은 몇 달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체중이 10㎏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가 매달린 생각은 사업 한두 개가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질 것 같은 절박함이었다. 그 삼성보다 더 독해진 곳이 SK하이닉스다. SK의 하이닉스 인수 뒤 만들어진 하이닉스 인(人)의 행동강령이 ‘반도체 전쟁 승리를 위한 독한 행동 수칙’이다.

이병철 창업 회장의 제1 경영 슬로건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다. 삼성인에게는 회사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하는 의식구조가 있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삼성은 국민의 자랑이었다. 그 삼성이 지금 국가적 우환거리가 되고 있다. 과거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는 애플에 뒤지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의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제 몫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지금 분위기는 일찍이 삼성이 겪어보지 못한 위기다. 제2 창사 수준의 리더십 발휘가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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